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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이인항의 시대극

 

  지난 두 달 동안 진행된 필자의 장편영화 촬영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제 편집을 거쳐 조만간 본격적으로 선을 보일 예정이다.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촬영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싶은데, 이어서 두 번째 작품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는 무협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한국에서 무협 장르는 안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실제 시도했던 몇몇 작품들이 하나같이 흥행에 실패했던 지라 드러내 놓고 말하기가 어렵긴 한데, 어쨌든 필자는 우리 땅에서 우리식의 무협영화를 찍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 무협은 결코 중국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진1] 필자의 장편영화 촬영현장

 

  주지하듯 중국 영화계와 드라마계에서 무협물은 너무나 익숙한, 전혀 새로운 것 없는 소재다. 지금도 수없는 무협물이 만들어져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다뤄볼 만한 무협영화는 거의 만나기 힘들다. 그게 참 이상하다. 더 커진 자본력, 첨단의 기술력, 세계인들에게 바로 소개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다양하게 갖추어졌는데도 무협영화의 수작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어째서 그러할까. 물론 그 원인 등을 몇 가지 각도에서 다뤄볼 순 있겠지만 결국 다 공허한 이야기 같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2010년도 이후 중국 무협영화, 조금 더 확대하여 시대극 중에서 관심이 가는 감독이 한 명 있으니, 바로 홍콩의 이인항(李仁港) 감독이다. 다뤄볼 만한 영화로 <삼국지-용의 부활(2008)>, <초한지-천하대전(2011)>, 그리고 <금의위-14검의 비밀(2012)> 세 편이다. 이인항은 1994년도에 장철의 무협 명작 <독비도>를 리메이크한 <독벽신도>로 감독 데뷔했고, 이후 이연걸이 주연을 맡은 <흑협>, 유덕화의 <파이터 블루>, 장국영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 할 <성월동화> 등을 연출하며 유명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많은 영화들을 연출하면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 애절한 멜로 등에서도 성과를 냈지만, 내가 볼 때 이인항의 장기는 역시 무협(시대)물이다.

 

[사진2] 이인항 감독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삼국지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탐낼 소재지만, 워낙 방대한 스토리라 2시간 남짓한 영화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90부작, 10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홍콩의 액션 거장 오우삼도 젊은 시절부터 적벽대전을 영화화할 생각을 했지만 여러 여건상 쉽지 않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을 만큼 삼국지를 영화화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몇 편의 삼국지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제일 먼저 포문을 연 이가 바로 이인항이었다. 이인항은 삼국지 속 인물 중에서 조자룡에 주목하여 <삼국지-용의 부활>이란 영화를 선보였다. 반신반의하며 영화관에 들어간 것에 비해 작품은 꽤 볼만했다. 유덕화, 홍금보, 메기큐의 연기 앙상블도 좋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뜨거운 욕망, 실존주의, 운명론 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단순하게 삼국지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 더 좋았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사극에 나오는 유덕화도 멋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영화이기도 했다.

 

[사진3] <삼국지-용의 부활> 스틸 컷

 

  이인항은 <삼국지-용의 부활>에 이어 <초한지-천하대전>을 연출했다. 익숙한 초한지 이야기 또한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영화로 옮겨내기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이 정도면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본다. 주연 배우들의 면면과 연기도 인상적이었고 각각의 싱크로율도 좋았다. 특히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홍문연에서 바둑을 두며 범증과 장량이 지략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무척 흥미진진했다. 장량에 이어 소하, 한신, 번쾌 등의 활약상과 그에 대한 묘사 역시도 재밌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진나라 말기, 그리고 천하를 두고 항우와 유방이 펼치는 대결을 그리는 초한대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지금도 수업 시간에 자주 활용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참고로 루추안 감독의 <초한지-영웅의 부활>도 함께 본다면 더욱 흥미진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사진4] <초한지-천하대전> 스틸 컷

 

  중화권 최고의 액션스타 견자단을 주연으로 내세운 <금의위-14검의 비밀>도 기억에 남는 무협영화다. 2010년대 무협영화를 꼽으라면 꼭 말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무협영화를 무협영화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화려하고 화끈한 액션일 터, 견자단의 힘 있고 다채로운 액션이 일단 시선을 잡아끈다. 사극에 잘 어울리는 조미의 역할도 괜찮았다고 본다. 요컨대 견자단과 조미의 매력을 십분 잘 살려낸 무협영화이고, 빠르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뭔가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견자단과 막상막하인 무술 내공을 보여주는 젊은 여성 빌런도 인상적이었는데, 견자단과 차별화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듯하다. 스토리는 좀 빈약하고 새로울 게 없지만 그럼에도 액션을 위시한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 꽤 잘빠진 무협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무협영화라면 언제든 봐줄 용의가 있고, 감독 이인항은 무협, 시대극에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시대극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인항은 이후 더욱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더 규모를 키워 성룡을 주인공으로 삼고 할리우드 배우 존 쿠삭과 에드리언 브로디까지 캐스팅한 대작 시대극인 <드레곤 블레이드(2015)>를 선보였고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나 깊이, 그리고 액션 등에서도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요컨대 대다수 중국 대형 상업영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국뽕이 가득 차오르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영화였다.

  이인항은 최근 들어 현대를 배경으로 한 대작들도 만들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가 무협물에 좀 더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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