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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왕가위의 <번화>

 

  실로 오랜만에 왕가위에 대한 소식을 좀 전해본다. 2013년 <일대종사> 이후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이 없었던 왕가위가 30부작 드라마 <번화(繁花)>를 제작하여 지난 연말 공개했다. 많은 화제와 인기를 끌었고 왕가위 특유의 감각적인 화면 연출과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 연기 등이 도드라지면서 역시 왕가위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혹자는 왕가위 영화 30편을 보는 듯하여 황홀하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그림1] <번화> 스틸 컷

 

  <번화>에 대한 소식은 진작부터 듣고 있었다. 드라마에 이어 영화로도 제작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열광하진 아니지만 나도 남들 못지 않은 왕가위 팬이고, 무엇보다 필자가 유학했던 상하이를 주 배경으로 삼는 작품이다 보니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왕가위의 작품들은 언제 완성될지 아무도 모르고, 중간에 코로나 사태가 겹쳐서 이 <번화>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희미해져갔다. 드디어 완성되어 방영이 되었다니 반갑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위주로 활약한 왕가위에겐 30부작 드라마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어진 듯하여 팬의 한 사람으로 기쁘다.

  왕가위의 <번화>가 큰 인기를 끈 것에 작품 외적으로도 몇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번화>는 소설가 진위청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9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왕가위는 홍콩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태어난 곳은 상하이며 5살 때 홍콩으로 이주했다. 따라서 왕가위가 상하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고 왕가위의 분위기와도 뭔가 잘 들어맞는 느낌이 든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90년대 상하이에서 일하던 평범한 공장 노동자가 주식과 무역 등을 통해 사업가로 크게 성공해 나가는 이야기다. 자, 여기서 90년대 상하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거 화려했던 올드 상하이가 다시 서서히 재현되기 시작하는 90년대 상하이, 즉 개혁과 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엄청난 돈이 돌기 시작하던 1990년대는 소위 무일푼에서 대박을 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넘쳐났던 시기였던 것이다. 주인공 아바오의 다음과 같은 대사가 무척 인상적이다.

 

“1993년 난징루를 걷다 보면 날아갈 것 같은 시대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우리는 운 좋게도 좋은 시대에 태어나 그 시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직 모든 것이 정의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시기였다”

 

  왕가위의 <번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데에는 물론 왕가위 특유의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이 단단히 한몫했을 테지만, 동시에 1990년대 개혁, 개방의 수혜를 듬뿍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온갖 기대와 희망을 품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서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 중국이나 경제적으로 꽉 막힌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번화>는 예고편만 봐도 왕가위 특유의 때깔이 제대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제 60대 중반을 훌쩍 넘은 왕가위는 언제 또 신작을 보여줄 것인가. 거의 10년 주기로 신작을 내고 있는데, 할아버지 왕가위가 보여줄 신작은 또 어떤 작품일까. 흥미로운 점은 왕가위의 여러 작품들이 자주 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번 <번화>에서 9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60년대 홍콩과 90년대 상하이,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림2] <번화> 포스터

 

  <번화>를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유학했던 2000년대 초반의 상하이가 생각난다. 상하이에서 살면서 상하이의 구석구석을 좋아했던 나 역시 <번화> 속 주인공 아바오의 대사에 공감을 하게 된다. 당시의 상하이는 뭔가 활기가 있었고 이래저래 빈구석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 자유로웠고 세상이 만만해 보였다. 물론 그때는 나도 혈기 넘치는 청춘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 시절 상하이가, 지나간 내 청춘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그림3] <번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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