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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국민성’ 담론의 성립 ― 루쉰과 『지나인 기질』의 관계를 중심으로(4)

 

 

국민성’ 담론의 성립 ― 루쉰과 『지나인 기질』의 관계를 중심으로(4)
(“國民性話語的建構以魯迅與『支那人氣質』之關係為中心)

 

 

 

리둥무(李冬木)
*李冬木 著, 『越境―“魯迅”之誕生』, 杭州: 浙江古籍出版社, 2023, 295-483.

 

 

  전체적으로 보자면 위에서 든 세 단락은 ‘최대 공통점’ 부분을 제외하면 뒤로 이어진 내용 안에서 문자에 변동이 비교적 많기에, 말하는 일이나 중점 그리고 전달하는 전체 내용이 모두 서로 같지만은 않다.

  첫 번째, 사건의 각도로 보자면, ‘1’에서 말하는 것은 루쉰이 도쿄에서 센다이로 가 의학을 공부하고 다시 센다이로부터 돌아온 경과를 말하여 역사 사실의 과정을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2’와 ‘3’은 곧 고분학원에 있을 때 토론한 문제의 관점과 의론에 대하여 표명한 바로 이는 쉬서우상이 사고하고 있던 문제이다.

  두 번째, 문제에 중점을 둔 부분으로 보건대, ‘1’이 강조하는 해결 방법은 ‘과학’으로, 곧 “과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2’가 강조하는 방법은 ‘혁명’으로, 곧 “유일한 구제 방안은 혁명”이라는 것이다. ‘3’이 강조하는 방법은 ‘문예’로, 곧 “잡지를 편찬하고 소설을 번역”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이 세 가지 모두 루쉰이 같은 시기에 고민한 것일 테지만 쉬서우상의 회고 속에서 강조한 부분이 서로 각각 다르다고 해석되었다.

  세 번째, “세 가지 관련 문제”는 두 사람 사이의 화제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취하는 방식이 다르다. ‘1’은 “그가 나에게 세 가지 연관 문제를 매번 이야기하곤 했다”로, 다시 말하면 루쉰이 화제를 제기한 것이고 “매번”이라는 말로 보자면 회고자 쉬서우상은 당시에 주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다. ‘2’에서 이런 화제를 제기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의 관계는 비록 희미하여 “어느 날 이야기를 하는데……”와 같이 주어가 불분명한 수사 방식이지만, 생략과 변동이 있기 전에는 두 사람이 나누는 화제에서 주동이 되는 위치를 알 수 있어 “이후로 나는 더욱 친밀함을 느껴”와 같이 쉬서우상이 이 화제를 들은 이후 루쉰에게 든 관심이나 루쉰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있다. 뒤에 이 구절은 “이후로 우리는 더욱 가까워져 만나기만 하면 중국 민족성의 결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로 고쳐져, 객관적으로 두 사람이 이 화제를 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3’에 이르면 “매번 나와 토론을 벌여”로 이미 화제를 누가 제기하고 누가 참여했는지 누가 주동했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연구자들이 루쉰과 쉬서우상이 ‘토론’을 벌였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되겠다. 하지만 필자는 이와는 다른 생각이다. 일본에 반년 일찍 도착한 저우수런이 이 화제에 관해 느끼고 생각한 바를 뒤에 온 사람에게 말하여 뒤에 온 사람이 흥미를 느끼게 만들어 화제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 화제가 루쉰이 평생토록 실천한 과제가 되었기에 쉬서우상에게 있어 루쉰 사후 다시 루쉰을 보았을 때 다시 새롭게 인식한 중요 문제이고 현실과 결합하여 루쉰을 이해하고 해석한 경우라는 것이다.

  네 번째, 위에 문제와 관련하여 세 단락의 후반부에서 전달하는 전체 내용이 대개 같지 않다. ‘1’은 루쉰의 사상이 당시에 이미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에 무게를 두고 있고, 쉬서우상이 당시 ‘저우수런’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적어도 신선하단 느낌을 받았기에 저우수런이 곳곳에서 그를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광업으로 졸업한 사람이 이런 문제를 생각할 수 있고 과학을 생각하고 그래서 의학을 공부하고 다시 기의종문했다는…… ‘2’는 8년 전 기억으로부터 이야기한 화제를 다시 떠올리며, 화제 가운데 세 가지 문제에 중점을 두고 보충과 토론을 벌이는데, 그 중 ‘성과 애’가 결핍이라든지 “두 차례 이민족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1’과 ‘3’에서는 모두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3’은 쉬서우상이 이 화제를 다룬 가장 마지막 경우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회고하는 글은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쉬광핑의 요청을 받고 작성한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루쉰의 인생 전체를 조망하며 앞에 두 차례 제기한 화제의 의의를 개괄했다 말할 수 있다. 즉 “후반생의 무수한 창작품에서 그 주지는 여기에 중심을 두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의 차이는 사람들이 쉬서우상을 대하거나 혹은 쉬서우상을 통해 루쉰을 사고할 때 과연 무슨 의의를 지니는 것일까? 필자가 생각건대, 이 문제에 대해 온전히 대답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 알고 있는 상황으로 보자면 이와 같은 차이는 심지어 ‘루쉰이 고분학원에 있을 때 국민성의 세 가지 관련 문제에 대해 자주 토론하곤 했다’라는 공통된 사실보다도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밀한 내용으로부터 한층 더 구체적 층면의 사고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장줘(張琢)가 ‘쉬서우상’의 ‘과학’이라는 세목을 가지고 자신의 분석 과정을 거친 후 다음과 같이 사고한 바와 같다. “하지만 과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의학을 배워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당시로 봐서 매우 독특했다.” 그래도 이 차이는 실제로 서로 다른 세부 내용과 서로 다른 관점 혹은 미묘한 변화를 거쳐 ‘국민성’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루쉰 일생의 작업에 대한 전체 평가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이 문예 운동에 대하여, 말하자면 국민성 낙후에 대한 연구에 있어 폭로하고 공격하고 일소하며 평생토록 게을리하지 않아 삼십 년을 하루와 같이 하여 가히 ‘혼신의 힘을 다했고 죽은 후에야 그만 뒀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시종일관 감탄해 마지않는 한 가지 이유이다.(「죽은 벗 루쉰을 기억하다」, 1936)

  그가 의학을 포기하고 문예를 학습했기에 신체의 만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지 않고 민족성을 치료하는 위인이 되었다. 그의 창작과 번역은 모두 600만여 자에 이르니 모두 민족성을 치료하려는 방편이었다.(「루쉰과 민족성 연구」, 1945)

  그는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연구에 있어 평생토록 부지런히 게을리하지 않아 이후 과감하게 의학을 포기하고 문예 운동에 종사했다. 그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이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여 비록 전부 해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공헌이 있고자 하였다. 그래서 잡지를 편찬하고 소설을 번역하며 그 주지는 여기에 중심을 두었다. 후반생의 창작물은 수백만 자에 이르는데 그 주지는 또한 여기에 중심을 두었다.(「잡지를 편찬하고 소설을 번역하다」, 1946)

 

  이것들이 바로 쉬서우상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다. 쉬서우상의 이처럼 독특한 ‘국민성’론의 루쉰관은 지기(知己)의 논법으로, 루쉰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이와 같은 가치를 보여주고 찾아내기 위해 거대하고 가능성이 충만한 과제를 남겼으니, 이는 곧 루쉰이 과연 어떻게 ‘국민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 생각을 위해 일평생 무엇을 했나이다. 그리고 20세기 80년대 이래 이 과제에 대한 토론은 ‘루쉰’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여 체제 내에서 해석하는 ‘루쉰’이 다시금 그때부터 시작하여 개혁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체제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개혁이 일단 정지하면 ‘루쉰’은 다시 체제 안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또 다른 화제이다.

  이런 이유로 쉬서우상이 위에서 말한 바를 수용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비로소 고분학원에서 있었던 세 가지 관련 문제는 실제 의의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국민성’은 루쉰이 “평생 부지런히 게을리하지 않은” 과제였으며 이 과제에 대한 탐구와 연구는 고분학원 시절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평생토록 게을리하지 않고 30년을 하루와 같이”한 과제를 계속하는 와중에 고분학원 시절 세 가지 관련 문제는 그저 하나의 시작이자 기점이며, 한 가지 시간의 부호와 한 가지 문제 의식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문제라고 하기엔 이것들은 매우 추상적이고 협소하며, 이후 사람들이 ‘루쉰’으로부터 이해하고 파악한 내용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당연히 완정한 ‘루쉰’ 형상으로 독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출발점이 곧 종착점이다. 이것이 바로 ‘쉬서우상’ 문헌에서 역사를 해석할 때 나오는 한계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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