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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도시와 시] 양주(揚州)(2)

 

  두목은 양주에서 임기를 마치고 수도로 돌아와서 낙양(洛陽)의 법률을 집행하는 동도(東都)의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다. 지방 생활을 마감하고 드디어 중앙부처로 올라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관료로서 이력을 쌓고 출세를 위해 매진할 출발이 시작된 것이었다. 양주를 떠날 때 상사였던 우승유(牛僧孺)가 해준 충고(앞 회 참고)만 잘 따른다면 별다른 문제점도 없을 것이었다.

 

 

불청객의 선 넘은 요구

  이런 즈음에 이원(李願)이라는 인물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병부상서(兵部尙書)로 퇴직한 이원의 연회에는 유명인들은 물론이고 이름난 가기와 무녀들도 참석했다. 두목은 현직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초대를 받지 못했는데, 내심 참석하고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 사람을 시켜서 참석하고 싶다는 의중을 이원에게 전했다. 이원은 현직 감찰어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두목을 초대했다.

  연회 당일, 뒤늦게 초대를 받은 두목은 남들보다 늦게 도착했기에 주위의 이목을 끌면서 입장했다. 연회장으로 들어선 두목은 이원에게 물었다.

 

“자운(紫雲)이라는 기녀가 있다는데, 그녀가 누구요?”

 

  이원은 말없이 한 여인을 가리켰고, 두목은 그 기녀를 한동안 주시한 후 말했다.

 

“과연 듣던 대로 미녀로군요. 그녀를 내게 주시오.”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수많은 기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두목을 쳐다보았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당시 아무리 기녀의 신분이 낮다고 해도,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보자마자 달라는 요구는 상식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목은 애초에 초대자 명단에 없었던, 마치 불청객과 같은 처지에 이런 추태라니.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두목은 이를 수습해 보려고 그 자리에서 시를 한 수 지었다.

 

<병부상서의 연회석상에서 쓰다(兵部尙書席上作)>

호사스런 집에서 오늘 화려한 연회가 열렸는데 華堂今日綺筵開,

누가 두목을 오라고 불렀던가? 誰喚分司御史來?

뜻밖에 미친 소리로 좌중을 놀라게 하니 偶發狂言驚滿坐,

세 줄로 늘어선 가기들이 일제히 고개 돌려 쳐다보네 三重粉面一時回.

 

  누가 분사어사(分司御史, 두목을 지칭)를 불렀느냐고 하는 것으로 봐서, 두목도 자신의 방문이 무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기녀를 달라는 말도 실언이었음을 직감하고 ‘미친 소리(狂言)’라며 은근히 넘어가 보려 했다. 시의 내용은 즉흥적이고 자조적이다. 깨진 흥이 이 시로 회복이 되었을까. 가야 할 자리와 가지 말아야 할 자리를 분간 못하고 기녀를 탐했던 두목의 명성, 아니 악명은 다음날부터 널리 퍼져 나갔다.

 

 

향락의 아이콘, 두목

  장안에 온 후에도 두목의 행적은 양주에서와 별반 다름없이 이렇게 계속되었다. 우승유의 애정 어린 충고도 공허해질 뿐이었다. 두목이 한결같이 술집을 출입하며 기녀를 만났던 것을 보면 그는 그 시대의 향락과 쾌락의 아이콘이 아니었을까. 놀기 좋아하는 두목은 친구 한작(韓綽)에게 주는 시에서 양주를 그리워했다.

 

<양주의 판관인 한작에게 부치다(寄揚州韓綽判官)>

청산은 흐릿하고 물은 저 멀리 흘러간다 靑山隱隱水迢迢,

가을은 저물어 가지만 강남의 풀은 아직 시들지 않았네 秋盡江南草未凋.

이십사교의 밝은 달밤에 二十四橋明月夜,

그대는 어디에서 기녀에게 퉁소를 불게 하는지 玉人何處敎吹簫.

 

  시를 보낸 대상인 한작은 양주 시절의 동료였고 함께 밤 문화를 즐겼던 인물이다. 이 시는 두목이 장안에 돌아온 직후 또는 그 이듬해에 쓴 것인데, 지금쯤이면 한작이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지 잘 안다는 내용이다. 푸른 산이 흐릿하다는 것은 물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양주에 물안개가 피어올라 산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때는 늦가을, 세상의 풀들이 모두 시들어 가지만 강남의 풀은 여전히 시들지 않았다. 장안의 밤은 적막하지만 양주의 밤은 여전히 시들지 않는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장안과 양주는 그 거리만큼이나 풍경이 다르다.

 

 

양주의 달빛이 그립다

  이십사교는 양주를 가로지르는 교량의 개수라고도 하고, 다리 위에 24명의 가기(歌妓)들이 줄지어 서서 퉁소를 부는 모습을 빗댄 것이라고도 한다. 전자로 본다면 달 밝은 밤에 24개의 다리가 늘어선 양주의 번화함을 알 수 있고, 후자라면 달밤에 다리 위에 늘어선 아름다운 가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풍류 가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가을, 밝은 달, 교량, 가기, 퉁소 소리가 만들어 내는 양주의 밤 분위기를 두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바로 이런 밤에 한작은 오늘은 어느 기녀에게 퉁소를 불라고 하는지, 즉 한작 그대는 여전히 양주의 가을밤을 만끽하고 있겠지라는 뜻이다.

 

[사진1] 양주의 이십사교(二十四橋)

 

  중국 시에서 달은 주로 그리움과 외로움의 표현이다. 객지를 떠돌던 이백(李白)은 달빛에 잠 못 들어 홀로 깨어서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고, 대나무밭에 홀로 앉아 악기를 연주하던 왕유(王維)는 적막함에 달을 올려다보았고, 소나무 사이에 걸린 달을 보면서 내면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달은 외로움과는 정반대인, 밤새 친구와 어울려 놀던 도시의 유흥을 돋우는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달이다. 두목의 달에는 읽을수록 새어 나오는 여운은 없을지라도, 솔직하고 직설적인 매력이 있다. 그래서 두목의 시를 읽다 보면 앞뒤가 같고 투명한 명쾌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독자의 시선이 아니라, 두목 자신은 이런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지, 다음 회에서 작품을 통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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