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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도시 어느 여인」(1)

 

 

도시 어느 여인(1)
(都市一夫人, 1932)

 

 

선충원(沈從文)

 

1

  1930년 나는 우창(武昌)에서 지냈는데 왜냐하면 동생이 장교로 있어 마침 우한(武漢)으로 와 사령부 군수 관계 공무를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젊고 유능한 군인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 나이가 쉰 전후의 고급장교 하나는 이야기를 할라치면 다른 젊은 사람들보다 이해력이 빨랐기에 젊은이들이 가고 나면 이 장교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의기투합하곤 했다. 이 사람으로 말하자면 품행과 학식이 여러 장교 가운데 드물게 보이는 인물로 재능과 자격으로 본다면 군단장을 해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 풍조가 악덕을 장려하는지라 권력자들 투기에 영합하면 학식과 덕행이 있는 것보다 기회가 더 많았기에, 이 나이 든 고급장교의 운명은 한직에나 머물며 소장참의(少將參議) 이름을 달고 청향(淸鄕)이나 감독하고 적당히 월급이나 타 먹으며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때로 이 일로 이야기가 나오면 그를 대신해 푸념을 늘어놓고 젊은이가 혈기에 넘쳐 내지르는 욕지거리 몇 마디 던지면 그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군인이 장자(莊子)를 좋아한다니, 생각해봐요, 참의 되는 거 말고 달래 다른 일이 있겠어요?” 자기 자리에 만족하며 세상사는 접어두고 고상하고도 소탈한 성격이니, 장자 한 권과 백주 한 병만 쥐어주면 과연 무슨 일이 그에게 대수일까 싶었다.

  이 소장은 독신으로 한커우(漢口)에 머물고 있었고 나는 우창에 있었기에 우리 거처 사이에는 언제나 황색 급류가 흐르는 큰 강이 있었다. 때때로 나는 강을 건너 그를 보러 가 둘이서 쓰촨 음식점에서 깐쇼 붕어를 먹었다. 때론 그가 강을 건너 나를 보러 오기도 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 가는 줄 몰라 강을 다시 건너갈 방도가 없으면 내 거처에 주저앉았다. 술도 마시고 못다 한 이야기도 계속하며 서산(蛇山) 주둔 부대 나팔수가 날이 밝아 나팔 부는 연습하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 둘은 곯아떨어져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한번은 고향 친구 하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강을 건너가는데 5번 부두에 정박한 증기 잔교배를 모두 뒤지고 다녀도 그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그 잔교배에서 그 소장과 마주쳤는데 잔교배 선실에서 어느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인 옆에는 가죽 가방이 많아 상황을 보아하니 그도 역시 배웅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배웅하여 남자는 많아 봐야 스물 서넛 정도로 늠름하고 의젓하게 생긴 청년이고 회색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풍채와 분위기를 보건대 이 청년이 군인 출신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청년은 말없이 거기 서서 미소를 지으며 그 앞에 있는 소장이 여인과 나누는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여인은 서른이 넘어 보였고 차림새가 아주 단정하여 화려하지만 천박하지는 않아, 나이가 좀 많더라도 사람을 끄는 풍모를 지녔고 말할 때는 종종 미소를 짓는 모양이 자태가 고우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나이로 봤을 때 모자지간은 아니고 품색으로 보자면 부부도 아니어서 소장 친척이 아닌가 생각했다. 바야흐로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배에 오른 사람이 가득하여 소장은 나를 보지 못했고 그쪽으로 건너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마땅치 않았다. 나는 여기저기 고향 친구를 찾아 헤맸고 도통 보이질 않아 부두에 올라 강가 길에서 소장을 기다렸다.

  삼십 분이 지나 배는 떠났고 배웅하는 사람이 모두 흩어진 다음에야 소장이 잔교배에 서 있는 걸 봤고, 손을 들어 허공에 흔들며 잔교에서 내려 진흙탕으로 몇 걸음 쫓아갔고 배 위에 두 사람 역시 흰색 손수건을 꺼내 흔들었다. 배가 떠나고도 시간이 좀 지나서야 그는 강가 도로에 올랐고 고개를 숙이고 도움판을 걸어오는 모양새가 친구가 떠나 애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고, 나도 친구를 전송하러 나왔고 진작 있는 걸 봤지만 이야기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는 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그 남자와 여인을 봤다는 말을 듣고 내 말을 질책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예의를 차린다는 사람이 그토록 좋은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군! 백면서생이 나를 부르지도 않소? 진작 봤으면 좋았을 걸. 봤다면 서로 소개를 해줬을 것을! 너무 소심한 걸 후회하게 될 거요. 오늘 실수한 거요, 조금 전 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실례를 조금 하더라도 실례하는 것도 좋다는 걸 알게 될 거요. 그렇게 화려한 여인이고 그 여인이 당신이랑 알고 싶어 했다오! 그 남자로 말하자면 당신 동생하고 친한 친구이고 당신이랑 무척 더 알고 싶어 했소! 당신 얼굴을 잘 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당신과 악수하고 당신 말을 듣는다면 그에게 아주 큰 즐거움을 줄 것이라오!”

  나는 그제야 그 청년이 말없이 미소 짓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 풍채 좋은 남자가 장님이요?” 친구가 그렇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이 장님 마누라요? 친구가 다시 그렇다고 했다.

  소장 말을 듣고, 또 그 부부가 남긴 고귀한 인상이 떠올랐기에 기회를 놓친 것을 정말로 후회했다. 나는 화가 좀 치밀어올라 다시 말을 하지 않고 소장과 같이 강가 대로를 건너 프랑스 조계지의 주장로(九江路)로 걸어갔고 조금 지나서야 배 위에 그 두 사람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갔고 기타 다른 많은 일들을 캐물었다. 원래 남자는 샹난(湘南) XX 어느 지주의 아들로 광둥성 황푸군관학교에 있을 때 우리 동생과 같은 부대에서 지냈고, 여인으로 말하자면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과거 생활은 새로 결혼하면서 청산하고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세월을 보낼 요량으로 다시 보기 어려웠다. 소장이 이 일을 말할 때 가벼운 탄식이 묻어났다. 왜 그렇게 젊은 사람이 장님이 되었는지 물으며 내전에서 부지불식간에 입은 상처가 아닌가 물으니 ”작년에 그리됐다“라고만 대답했다. 말과 표정 사이로 단번에 다 말 못 할 이야기가 있는 듯했고, 무슨 계산이나 꺼리는 게 있어 지금은 나에게 말하려 하지 않는가 싶었다. 결국 그가 말했다. ”이건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요.“ 하지만 평소 이야기하며 소장이 소위 말하는 인정상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에, 그리고 인정상 할 수 없다고는 여겨지지 않았기에 그때도 그렇게 주의하진 않았고 더는 묻지도 않았다. XX로를 지나 어느 극장 앞에 다다랐을 때 그 고향 친구를 만나게 되어 우리 세 사람은 다른 일 때문에 배 위의 두 사람은 잊게 되었다.

  우창으로 돌아오자 오늘 배 위의 부부가 생각났고 그 여인을 어디선가 한번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베이징인지 상하이인지도 구분이 안 됐다. 소장이 말한 그 부부가 나를 만나지도 않았지만 품었던 정리를 잊을 수 없었고 이 기회를 놓쳤으니 내가 직접 샹난에 가서 그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 외에는 만나볼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기회를 놓친 사실이 너무 한스러웠다.

  이틀이 지난 후 주중에 학교에는 이렇다 할 일이 없었고 날씨는 너무 좋고 강 건너 소장을 찾아 한양(漢陽)으로 가 병기공장 내부를 참관할 생각이었다. 강을 건너는 증기선 위에 많은 사람들이 그날 신문을 쳐다보며 증기선 한 척이 사고가 난 소식을 이야기하므로 지역 신문 한 부를 사서 보니 ”셴타오“(仙桃)호 조난 전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배는 그저께 출항한 그 배가 아닌가?“ 황급히 그 배가 조난한 다른 상세한 기사를 살펴보니 내 기억이 전혀 잘못된 게 아니고 분명히 그저께 출항한 그 배가 맞고 탑승객 470여 명 모두 달리 손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배와 함께 침몰하여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의외의 소식에 얼이 빠져 현기증이 나서 마음속으로 너무 슬펐으나 주위 사람에게 말 한마디 못 했다. 그래서 다시 다른 신문 한 부를 사서 관련 기사를 찾아 혹시 상이한 소식이 있는지 살폈다. 새로 산 그 신문에는 본국 군함이 목격한 침몰 상황에 대한 무선 전보가 실려 있어 마찬가지로 사람과 배가 모두 침몰했다 하니 모든 일이 사실과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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