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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무협 이야기

 

  이번 겨울은 무협이다. 대만의 한 무협소설을 번역하고 있고, 단편이지만 무협영화를 한 편 찍고 있다. 그렇다 보니 새삼 무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무협이란 과연 무엇인가. 일단 무협의 핵심은 ‘협의’의 구현에 있고, 그 서사의 핵심은 역시 ‘복수’가 아닐까 싶다. 협에 대해 말하자면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저 유명한 『사기』 속 「유협열전」의 한 대목을 거론해야 할 듯 하다. 사마천은 협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 행위가 반드시 정의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었고, 그 행동은 과감했으며 승낙한 일에는 성의를 다했으며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남의 고난에 뛰어들 때는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림1] <독비도> 스틸컷

 

  무협의 사상적 배경은 또한 어떠한가. 일단 무협하면 도가적 가치가 떠오른다. 무협영화나 무협소설 속 주인공은 대개 탈속하여 초야에 묻혀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잠시 어지러운 속세에 등장하여 정의의 심판을 한 뒤 다시 속세를 등지고 떠나간다. 영화 속 배반과 복수, 욕망, 절정의 무예와 폭력도 결국 다 부질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은둔으로 돌아간다. 비우고 떠나가는 것, 그것은 역시 도가적 가치다.

  그렇다고 무협에 유가적 정서가 없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제세구민(濟世救民)의 기치를 걸고 현실에 뛰어들지 않던가. 물론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고 마지못해 나서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맡은 이상 사마천의 말처럼 철저히 임무를 완수한다. 또한 그들에게도 충과 효는 꼭 지켜야 할 가치고,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주는 복수의 셈법 역시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가.

  세 번째로 묵가의 이미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묵가의 여러 출신설 중 하나가 협객 출신이라는 설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의 횡포를 두고 보지 않고 맞선다는 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폭력의 한복판에 뛰어든다는 점, 그리고 고독하고 검소하며 강건한 이미지 등은 무협영화 속 주인공들과 썩 닮았다.

  불교적 요소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이런저런 설명을 다 제쳐두고 일단 중국 무협을 논하면서 소림사를 빼놓을 순 없지 않은가. 종합해보면 무협, 무협영화의 사상적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림2] <동서서독> 스틸컷

 

  다음으로 무협의 서사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자. 무협의 메인 테마는 뭐니뭐니해도 ‘복수’다. 무협영화에 복수가 빠지면 말하자면 앙꼬없는 찐빵같은 것이 된다. 가족, 친구, 스승에 대한 복수가 주요 서사가 될 터이다. 그리고 현실의 여러 제약을 뛰어넘는 시원하고 호쾌한 액션, 그것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무협의 맛이 산다. 노래가 만국의 공통어이듯 액션 또한 그러하다. 관객들이 무협영화에 기대하는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액션일 것이다.

  자 그러니 강렬한 복수, 호쾌한 액션이 빠진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무협영화가 되질 못한다. 어설픈 로맨스를 끼워 넣거나 애매한 코미디, 혹은 판타지 등을 가미하는 순간 그것은 이도저도 아닌 잡탕이 되기 쉽고, 주저주저하거나 뭔가 메시지를 더하려고 하면 영화는 산으로 가게 된다. 일도양단의 단순함과 순수함, 그리고 강렬한 복수가 완성되어야 무협영화로서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장철, 호금전의 6, 70년대 무협 걸작들은 바로 그 공식을 잘 갖추고 있다. 그 뒤를 잇는 서극의 여러 수작들, 리안의 <와호장룡> 같은 명작들도 무협의 핵심을 잘 살리고 있다. 과거에 비해 중국영화의 파이가 엄청 커지고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이렇다 할 무협영화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수정주의네, 포스트모더니즘이네 이런저런 표현을 갖다 붙여봐도 빈약하고 구차할 뿐이다.

 

[그림3] <검우강호> 스틸컷

 

  다음으로 무협영화의 시, 공간적 배경과 분위기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려 한다. 무협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일단 고대가 되어야 한다. 좀 다르게 말해서 총이 나오기 시작하면 곤란하다. 무기는 역시 칼이나 활이어야 한다. 대략 그런 이유로 이소룡과 성룡의 영화들을 무협영화로 부르기엔 좀 애매하다. 즉 <당산대형>이나 <정무문>, <사망유희>, 그리고 성룡의 <취권>, <사형도수> 등을 무협으로 칭하는 건 영 어색하다. 물론 그들의 정신 역시 협일 수 있으나 일단 그 영화들은 무협영화가 되기엔 시대적 배경이 좀 맞지 않는다. 그냥 무술영화, 혹은 권격영화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성룡의 영화는 대개 누구나 볼 수 있게 자극적이지 않고 유머와 휴머니즘을 장착하고 있는데, 바로 그 부분 또한 무협영화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룡 영화에는 무협영화 특유의 ‘비장미’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무협의 공간은 두말할 것 없이 ‘강호’다. 강호란 어디인가. 사람이 있는 곳이 곧 강호다. 물론 무협영화를 무협영화답게 채색하는 구체적인 강호의 공간은 가령 이러하다.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무성한 대나무숲, 고요한 달빛이 반짝이는 갈대밭, 또는 북적거리는 객잔, 활기 넘치는 저잣거리, 뿐인가, 나룻배가 떠다니는 강가, 모래가 휘날리는 사막도 빠뜨릴 수 없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절대 빠지면 안되는 것이 무협영화 특유의 낭만적 색채일 것이다.

  다음 호에서도 무협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좀 이어가려 한다. 바로 그 유명한 김용의 무협소설과 역대 무협영화 수작들에 대해 좀 더 논의를 해볼 예정이다.

 

[그림4] <칠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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