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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의사」(8)

 

 

의사(8)
(醫生, 1931)

 

 

선충원(沈從文)

 

  닷새째가 되어 그 괴상한 사내가 “이틀만 남았어”라고 반복하여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기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한데 얽힌 와중에 이 사람이 이틀만 지나면 여인이 부활할 것이라 믿고 있으니 이틀 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되었죠.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이 심히 믿을 바가 못 되어 어느 순간이라도 말이 바뀔 수 있었죠. 미치광이에게 인간 세상의 “신실함”을 따지는 것은 처음부터 믿을 게 못 되는 것이지요. 그에게서 빈말 한 마디 얻어낼 수 없었고 신용 깃든 말 한 마디 얻어낼 수 없었죠.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은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여 얻어낼 수 없는 것이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종 계획을 세워도 그와 같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가 그녀와 나누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쓸데없는 말을 들으며 이 동굴에서 암담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죠.

  엿새째 날 있던 일을 간단히 말하지요. 그날, 그 미치광이의 눈에서 빛이 번뜩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혼자 밖으로 나가 산꽃을 잔뜩 꺾어 동굴로 돌아와 정성스레 시신 주변에 뿌려 놓았죠. 그토록 기뻐하는 모양이 결국 나에게 좋을 게 없다 보았는데, 왜냐하면 시간이 되면 여인이 부활하는 것 말고는 나에게 좋을 구석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죠.

  나는 별도리 없이 옛날 일을 다시 끄집어내 나를 언제 보내줄 거냐 물었죠. 본래 나는 평소에도 사람을 대할 때 퍽이나 겸손한데 아주 공손한 태도로 그에게 말했어요.

  “여보세요, 저 이제 그만 가도 되지요? 이제 더 필요가 없잖아요.”

  그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는 듯 보였고 잠시 뒤 다시 말했어요.

  “돌아가고 싶어요, 공연히 당신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

  “……”

  “축하해주고 싶어요. 선물 좀 준비해 드리고 싶어요, 알겠어요? 간단히 한둘 준비하려고 하니 돌아가면 사 올 수 있어요.”

  “……”

  “잠시 나가서 해도 보고 바람도 쐬고 싶은데 괜찮아요? 난 태양을 너무 좋아하는데 당신은 태양 좋지 않아요?”

  “……”

  “우리는 지금 친형제 같고 우린 술 한잔하면서 이 좋은 날, 좋은 일을 축하해야 해요. 얼얼하고 달달한 소주 한잔 어때요? 소주 한잔이 정말 생각나요. 술은 좋은 거라 생각해요.”

  “……”

  “어디서 꽃을 이렇게 많이 꺾어 왔나요? 이 꽃이 이리도 이쁘니 복숭아꽃인가요? 며칠 지나면 활짝 피고 나도 가서 좀 따오고 싶어요. 나무에 올라갈 수 있지요? 보아하니 기술도 제법 있을 거 같고 왜냐하면 당신이……우리 밖으로 나가 새집 따서 놀자구요, 좋지 않아요?”

  “……”

  “새 잡을 줄 알아요? 서양총 본 적이 있나요? 좋아하면 한 자루 보내줄 수 있어요. 우리 거기 같이 가서 봅시다, 당신 정말 만족할 거요. 그 총이면 가시덤불에서 꿩도 잡고 눈밭에서 비둘기도 잡고

  “……”

  “우리 먹은 감자가 너무 좋아요, 어디서 얻은 건가요? 당신 농장에서 난 것이지요? 계란 먹을 때 불로 굽지 않으니 솜씨가 훌륭하네요. 이 계란은 당신이 손수 기르는 닭이 소변보는 곳에서 들고 온 거 아니에요? 매우 신선하니 척 보면 알아요.”

  “……”

  “연극을 보지요? 극장에서 뵌 분 같아요.”

  “……”

  나는 매승(枚乘, 기원전 약 210-138)의 󰡔칠발󰡕(七發)에 나오는 기술을 발휘하여 이 “왕자님”께 들어 바쳤고 온갖 감언이설로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는 어느 하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요. 그가 내 말을 듣는 것처럼 보여도 이 말이 별 의미 없는 잡담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나는 빈말을 써서 나를 구출하는 것 외에는 이 위험한 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연이어 방향을 틀어 죽음에서 깨어나 살아나는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이들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그의 상상을 끌어낼 수 있다 여겼죠. 그에게 한무제(漢武帝) 이야기를 하고 서왕모(西王母)가 신선이 된 이야기, 동방삭(東方朔)이 복숭아를 훔치다 두들겨 맞는 광경, 당명황제(唐明皇帝)가 월궁을 거니는 모양, 서시(西施)가 빨래하는 이야기, 도화원(桃花源), 마옥룡(馬玉龍)과 십삼매(十三妹), 황제, 미인, 검선(劍仙), 영웅을 늘어놓으며, 내가 아는 데 더해 꾸며낸 이야기를 덧붙여 그 사람에게 들려주었죠. 이것저것 지껄이다 보니 바닥이 드러났고 그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질문 하나 없이 칭찬이나 의문 없이 미소로만 대답했지요. 장담컨대, 내가 어느 젊은 아가씨에게 구애했다면 내가 말하는 다정함과 태도의 진실함과 잘 해주려는 마음으로 보자면 제 아무리 정숙한 여인네라도 나를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오. 하지만 이런 괴상한 사내를 만났으니 한 해를 다 보내도 실패할 게 뻔했던 게지요.

  일들을 좀 더 공교롭게 만들어 보지요, 왜냐하면 자고로 모든 일이 공교로운 것이니깐요. 비록 실패를 맛봤어도 절망에 빠지진 않았죠. 그가 내 말에 귀 기울이진 않았어도 좋아는 한 것이죠. 나는 오직 하루가 남았고 내일 만약 여인이 부활하지 않으면 피할 길 없는 재난이 닥칠 것이며 오늘 무슨 방법을 내어 나를 구출하지 못하면 시간이 다 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이죠. 생로를 말로 찾지는 못하더라도 투기성 있는 말에 좀 의지해야만 했지요. 이건 중요한 문제임을 알고 자리에 앉아 반나절을 궁리하여 드디어 다시 입을 열었죠. 앞서 잡은 방향이 틀렸으니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말했어요……

  이게 바로 들어맞고야 말았답니다. 웃는 모양이 전보다 자연스러워지고 조금은 놀라면서 나의 해박한 지식에 신기해했지요. 양보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재차 의견을 내세우자 상황이 좀 나아지면 놓아주겠다는 의사가 보여 고개를 가로젓는 와중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땐 아직 대낮이었는데 내가 책문 밖으로 나가 밖을 좀 바라볼 수 없는지 간청하자 가부를 표하지 않아 양보가 있다고 보고 그의 손을 끌고 책문으로 다가갔고 그는 곧 나에게 문을 열어주었죠.

  내가 태양을 보았지요! 태양빛 아래 늘어선 산들과 뾰족한 봉우리가 곳곳에 솟아나 그림 속에 풍경처럼 좀 이따 발아래를 내려다보다 현기증이 올라 쓰러질 뻔했지요. 원래 우리 동굴은 앞으로 난 길은 그리도 험해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정말이지 꿈속의 경치였죠! 나는 한편으로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의 안색을 살피고, 다른 한편 그 한줄기 길을 조심스럽게 살피는데, 그러자마자 그에게 이끌려 뒤로 육중한 책문이 닫히며 난 여전히 지옥굴로 돌아가게 되었죠.

  밤이 되어 각자 감자 조금 하고 밤 몇 개를 먹고 절호의 기회가 왔다 생각하며 낮에 말했던 그 일을 다시 꺼내며 제목을 달아 그에게 말하며 그에게 알리길 나를 좀 피해 있으라 했지요. 그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 걸 보고 그의 뜻을 오해하여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더욱 감동을 주어 이야기했어요. 그 기괴한 길로 천당을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설명하고 사탄을 만드는 전교자가 되어 마음속이 몽롱하고 무슨 말을 해야 내 활로가 열릴까 몰라 입에서는 그가 시험해봐야 하는 거짓말을 늘어놓았지요.

  그렇게 해야 도망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내가 일을 망쳐놓을지 그 누가 알았겠소? 내 이 팔뚝이, 이 상처 입은 팔뚝이 그에게 비틀렸고 머리에 일격을 당한 듯하여 깨어났을 땐 마치 꿈을 꾸는 듯 했고 왜 그 멍석 위에서 자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죠. 밤바람이 차가워 깨어난 것이고 깨어났을 때도 여전히 비몽사몽이었고, 하늘에 별을 보니 쏟아져 내릴 것 같았고, 하늘 한 구석엔 유성이 길게 창백한 꼬리를 늘어뜨리고, 멀리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시냇물 소리도 들렸죠. 시간을 보니 날이 곧 밝을 것 같았는데 닭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죠. 속으로 생각했죠. 이게 내가 만든 환각인가, 아니면 아직도 이승에 살고 있는 건가 말이죠.

  시간이 지나 시골 사람이 나를 발견했고 내가 시내 의원의 의사라 밝히니 그 집에서 하루를 쉬고 그때 난 너무 쇠약해져서 멍석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이 사람에게 묻고 난 후 내가 시내를 오십 리 벗어나 있단 걸 알았지요.

  당신들 내가 그곳에서 곧장 이곳으로 온 줄 알지요? 내 턱을 보시면 교외 어느 이발관에서 온 걸 알겠지요. 내가 열흘 동안 면도를 안 했지요? 시내로 오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놀랄까 두려워 거기서 앉아 있다가 외상으로 하고 온 거랍니다. 거기 선생은 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내가 시내에 사는 사람이라고 안심하고 받아줬으니 우리 이곳 풍속이 나쁘지 않고 인심이 그리도 소탈하답니다.

  그다음 날, R시 전체가 의사의 일을 알게 되어 의사가 귀신을 보았다 하였다.

 

  민국 20년 4월 24일 상하이에서 완성하다

沈從文 著, 『沈從文全集』7, 太原: 北岳文藝出版社, 2002, 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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