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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의사」(7)

 

 

의사(7)
(醫生, 1931)

 

 

선충원(沈從文)

 

  이 미친놈은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어 이 동굴로 데리고 와 나 보고 기사회생하게 해달라 하고, 만약 내가 이 임무를 해내지 못하면 그 사람 손에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지요. 방법을 생각해보니 그가 한눈을 팔고 있을 때 때려눕히면 죽을 곳에서 도망쳐 나올 희망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내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확실히 그는 퍽이나 건장하여 무슨 계책을 꾸미려 해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해서, 만약 무력을 쓴다면 내가 불리할까 겁나니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것이지요. 나는 문득 아주 영리해져 내가 이미 이 사람 포로이고 저항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지요. 차분한 척 아주 평화롭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정말 정신이 멍해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나를 데리고 온 거요? 그녀를 살려내려고 나를 필요로 한 거요? 좀 전에 그녀를 땅속에서 안아 나온 거요?” 그가 아무 말이 없어 나는 생각하다 또 말했지요. “여보시오, 우리가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당신 뜻을 알겠어요. 우리 좀 차분해집시다. 활용할 도구를 좀 준비해야겠어요. 여기 당신 집이지요? 물 한 모금 마십시다. 뜨거운 물이 있으면 참 좋겠소. 좀 보세요, 내가 오랫동안 물을 못 마셨으니 당연히 목이 마르지 않겠소?” 그래서 그는 등을 들고 나가 표주박 하나를 가져오니 표주박엔 맑은 물이 가득했고 나는 그 물이 깨끗한지 잘 몰라 한 모금만 마시고 말았지요.

  나는 그의 말투를 흉내 내며 우리가 도시에서 십리는 떠났지 않냐고 물었지요. 좀 이따 다른 방법을 써, 시내로 나가 저녁 먹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요. 그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지요. 급기야 나는 소변이 마렵다고 했는데, 그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지라 조용히 그의 눈길을 좇아가니, 이 동굴이 기다란 모양이고 다른 모퉁이, 그러니까 창고 맞은편 구석에 쪽문이 있는 걸 알았지요. 마음으로 분명히 동굴 문이 틀림없다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척하여 의심 사지 않으려 했지요. 내가 정말 배고프다고 두세 번 말하니 그 이상한 사람은 등불을 내려놓더니 나에게 경고하는 눈길을 한 번 주더니만 그 문 쪽으로 갔지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 거는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나는 재빨리 따라갔어요. 아주 조악한 싸리문이 밖으로 열려 있었지요. 싸리문 사이로 은은한 하늘빛이 보이고 아주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이미 한밤중이라는 걸 알았지요. 이 사람이 나가서 나에게 줄 음식을 찾으러 갔는지, 아니면 칼을 가지고 돌아와 나를 죽여 입을 막으려 하는지 알 길이 없었죠. 그와 같이 있으며 나는 좀 겁이 났지만 그래도 달리 무슨 방법이 있지도 않아, 지금 이 동굴에 나와 그 시체만 같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요. 만약 그가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이 시체는 날씨 때문에 부패하기 시작할 테니 죽을 도리밖에 없었지요. 이 이상한 사내가 떠났으니 등불 하나를 가지고 이 시체를 잘 검사하면 어쩌면 무슨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지요.

  나는 등을 들고 관에서 끄집어낸 시체를 비추고 주의 깊게 살피니 밀랍 인간을 방불케 하는 시체가 너무 아름다워 놀라울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어요. 우선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가지가 어떻게 그렇게 기괴한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순장할 때 그런 의상을 입히는 것이지요. 다행히도 내가 의사이고 나이도 제법 들어 시체와 마주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참기 어려운 일인지 잊을 만큼 냉정해졌지요. 이 여인은 죽은 지 이틀 남짓 되었고 신기하게도 차분한 용모와 평안한 모양은 마치 잠든 모습 같았고, 만약 사지가 얼음장 같지 않았으면 죽은 사람인지 정말 모를 지경이었죠. 이 사람은 어떻게 그리 갑자기 병사하게 된 것일까요? 흙에서 끄집어낸 사람이 그녀 남편이 아닐까? 이것들은 모두 불가사의한 비밀이 되었지요. 만약 그가 그녀 남편이라면 어디서 살았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만약 이 여인이 그저 애인이라면 그녀는 어느 집 규수일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지요.

  나는 사실 배가 좀 고팠어요. 이 괴상한 사내는 나를 이 어둑한 동굴에 가둬두고 이 이름도 모르는 시체와 같이 있게 하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있었죠. 그리고 이 등불이 밤을 지나기엔 기름이 모자랄까 두려워 등불을 들고 창고로 가서 비춰보고 기름병이 있는지 보니, 그제야 창고 안에는 내가 반 달을 살기에 족한 양식, 기름, 물항아리 등이 모두 완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나는 되는대로 감자 몇 알을 집어 요기하며 사태 변화를 기다렸죠. 내 시계는 오래전에 멈춰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그 사람은 오질 않았죠.

  내가 이렇게 말을 계속하면 하루 종일 말해야 할 거고 그날 밤 일을 다 말하려면 지금처럼 해도 하룻밤은 걸릴 거요. 시간을 좀 건너뛰어 말하자면 내가 이 괴상한 사내를 세 번째 봤을 때 나보고 의사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이 여인에게 해보라고 명령했지요. 우선 나는 미친 사람 하나와 시체 하나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러다 가죽 가방 안에 방부제가 좀 있는 데 생각이 미쳐 시체에 전부 주사하고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안심시키며 시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고 달리 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니 그는 나를 바라보며 제법 믿는 듯 했어요. 그런데 내가 “나를 돌려 보내줘요”라고 말할 때, 말을 내뱉자마자 말 잘 못 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 두 눈에서 무언가를 봤는데 나에게 한마디 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죠. 그가 말했어요. “이레가 지나면 가도 좋아요.” 이 기한은 당연히 내가 받아들일 수 없고 전혀 이치에 안 맞는 말이었죠. 그래도 나는 의사이지만 그는 미치광이이고 그는 그 나름의 이치가 있었겠죠. 그때는 말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고 한참을 설명하며 그렇게 못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 말했어요. 나를 풀어주면 다른 사람에게 문제 삼지 않을 거라 말했죠. 내 말을 들어봐요…… 마치 돌에 대고 설명하는 것 같았고 그는 내 말을 막지도 않고 들으며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어요. 그 사람 주장은 돌덩이처럼 움직일 수 없고 팔뚝은 마치 강철로 만든 것 같아 무력을 사용해서는 해결을 볼 수 없었지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에 그가 잠들기만을 기다려 그의 열쇠를 훔쳐야지만 도망칠 수 있다 생각했어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미치광이 하나쯤 때려죽이는 일은 별 죄가 될 일도 아니었고, 그를 제압할 기회만 있다면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 이들 수단을 사용치 못할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 괴상한 사람 앞에서 나는 그 어떤 기회도 얻을 수 없었고 도망치려 해도 그는 피곤함이란 도통 모르는 듯했고 도통 눈을 감지 않았지요. 등불에 기름을 붓고 나에게 먹을 음식을 주며 한밤중에 나를 데리고 책문 밖으로 나가 볼일을 보게 하는 등 정신은 한없이 뚜렷했습니다. 그가 혼자 나갈 때면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았고 동굴 안에 있으면 시신 주위를 지키며 시신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미소를 지으며 시신을 향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이한 모양을 손으로 만들곤 했지요. 만약 최면술이나 도술을 신봉한다라면 나는 그가 이 죽은 시체를 기어코 부활시키고야 말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그가 잠들지 않으니 이 일을 처리하기 어렵게 되었지요. 가죽 가방 안에 수면제는 마침 다 떨어지고 없었고 그를 곯아떨어지게 할 방법을 다 생각해보아도 전혀 방법이 없었지요. 보통 땐 그리 흉악해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도망갈 마음을 먹고 한 발짝 걸음이라도 옮기면 마귀로 변하는 것이었죠. 내가 떠나려는 걸 알고 열쇠를 몸에 지니고 다녔지만 책문 근처도 못 가게 했지요. 좀 지나 겁에 질려 멍청해진 것인지 아니면 동굴 안에 환경 때문에 흐리멍덩해진 것인지 도망가려는 의욕이 완전히 사라지고 갑자기 차분해져 생명을 하늘에 맡기고 도망가려는 생각을 버렸지요.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어요. ……창고 안에 각종 음식을 먹고 목이 마르면 찬물을 마시고 졸리면 잠을 잤지요.

  가만히 구석에 앉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 그가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녀는 살아날 거야,” “살아날 거라고”라는 말을 읊조렸어요. 난 모든 희망을 버리고 너무 무료하기도 하여 그가 그렇게 하는 말을 들으면 멍청하게 “그녀가 살아날 거요,” “그녀는 살아난다고”라고 대답해주었지요.

  나는 희한한 경험을 하여 사람들이 무덤 속에서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지요. 경험으로 가장 좋은 지혜를 얻게 됐으니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바였죠. 첫째 날 한 시간은 일 년 같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또 달라, 정신을 놓지 않고 있으면 동굴 속에 내가 나 같지 않고 시내에 아는 다른 사람 같은 것이지요. 내가 별안간 실종되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당신들 너무 슬펐지요? 당신들이 거금을 들여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돈 주고 사람을 사서 강변을 수색하지 않았나요? 당신들은 그렇게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도 어떻게 내가 미치광이 하나와 죽은 사람 하나와 함께 산속 동굴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오래도록 태양도 보지 못하고 나날을 보냈다니요!

  도망갈 기회란 아예 없기에 나는 이 죽은 사람이 좀 걱정되기 시작하니, 날씨가 이미 안 좋아져 약품을 주사했다고 해도 내장이 부풀어 올라 조직에 변화가 생기면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요? 만약 이 미치광이가 죽은 사람 모양이 변한 것을 알고 황당한 꿈을 다시 못 이루게 된다면 나를 의심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기억하기로 이 점을 생각하여 나는 미치광이와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지요. 여러 방법을 쓰고 여러 화제를 떠올려 그가 좀 이해해주길 바랐죠. 내 입은 이 말 없이 조용한 미치광이 면전에서 전혀 쓸모가 없다고 말할 수 있었죠. 말을 다 마치면 그는 그저 웃기만 했지요. 날짜 세는 법은 알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음과 동시에 “이레”라는 말의 의미도 잊지 않았죠. 짐작하자면 이 괴상한 사내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죽은 사람이 이레가 지나면 부활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시체를 흙 속에서 꺼내와 이레가 지나면 부활한다는 말이 정말인지 시험하고 있는 것이었죠. 이레 뒤에 나를 동굴에서 나가길 허락해줄 수도 있고 그때면 여인이 부활했을 것이기에 의사인 내가 쓸모없어질 것이고, 만약 이레가 지나도 부활할 가망이 없다면 모든 죄가 나에게 미칠까 두려웠기에, 내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은 물론 나보고 시체를 업고 가서 묻으라고 할지 모르는 일이었지요.

  내가 그녀를 부활시키지 않았다고 의심 살지도 몰랐죠.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하나의 생각에 골몰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이 생각이 나에게 불리하다 하면 이 난관을 뚫고 나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이죠.

  그는 미치광이이지만 미친 것이 특히나 괴상했죠. 그는 하필이면 그날을 골라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하필이면 그날 시골에 내려갈 생각을 하여 하필이면 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 이 일이 나한테 떨어진 것이죠. 모든 일이 너무 공교로워 내가 꿈속의 인물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꿈을 꾸면 그렇게 오래갈 수는 없는 일이고 날짜를 계산해서 시계를 보고 대충 따져보고 분초를 자세히 세어보니 이미 나흘째가 되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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