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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의사」(6)

 

 

의사(6)
(醫生, 1931)

 

 

선충원(沈從文)

 

  비몽사몽 간에 내 옆에 누군가 있어 등불을 들고 이리저리 비춰보다가 내 얼굴도 비추니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니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죠. 나는 이 동굴로 잡혀 와 있는 것이고 동굴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온 지 한참 된 것 같았는데, 나를 보더니만 몸을 돌려 등불을 들고 비춰보는데 침착하고 서두르지 않는 모양으로 그가 이곳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내 앞에 서서 등불 뒤로 얼굴을 숨기고 있어 이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통 모르다가 잠시 뒤 알아차렸지요. 마치 실성한 것처럼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그에게 말했어요. “그래요, 그래, 왜 나를 여기 가둬 두고 벌 세우고 있는 게요? 도와줄 마음 하나 없어요!” 다름 아닌 바보처럼 흉내 내며 나를 끌고 왔던 그 남자였고, 아깐 너무 황망했지만 지금은 좀 진정이 된 상태였죠. 그가 나를 말 없이 쳐다보는데 앞서 나를 쳐다볼 때처럼 이상했고 그 사람 눈빛에서 무언가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 사람은 미치광이이고 졸개가 아니란 것을! 산채에 있는 사람들과는 도리를 논할 수 있고 몸값을 얼마나 지불할지도 상의할 수 있고 좋은 말로 타이르던지 좋게 좋게 애걸복걸할 수도 있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사람 일엔 전혀 관심이 없는 미치광이로,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귀도 무섭지 않을 것이니, 이렇게 보면 내 처지는 가히 진퇴양난이었죠. 그가 나를 잡아 왔으니 그 괴상한 두뇌로 참신한 계획 하나를 세웠을지 모를 일이어서, 그때 이 괴이한 사람의 두뇌 안에 들어앉은 괴이한 전설이 무엇일까 가늠하게 되었죠. 이 사람이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가? 이 사람이 나를 죽이면 어쩌지? 이 재난을 모면하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억울할까! 등불에 비친 동굴의 정경을 살펴보니 여전히 이 괴상한 사내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알 길이 없었지요. 등불에 비춰보니 내가 앉은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물건 하나가 있어 옷 보따리인지 아니면 이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죠. 그 괴상한 사내는 내가 그쪽을 눈여겨보는 걸 보더니 갑자기 철 집게 마냥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움켜쥐고 “가봐요, 가봐”라고 했어요. 그 목소리는 흉악하지는 않아도 굉장한 마력이 있어 나는 내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그를 따라가 보니 그제야 병자 하나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나는 그 사람의 말뜻을 알아채고 마음속으로 좀 전에 혼자 짐작한 바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생각했죠.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아 처음에는 미치광이라 생각했다가 지금은 이해가 되었어요.

  병자 옆으로 가 쪼그려 앉으니 그 사람이 여인임이 분명히 드러나, 키가 무척 큰 신체에 머리는 칠흑같이 새까맣고 얼굴은 창백하며 거기 누워 가만히 움직이지 않으니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요물에 홀린 공주님 같았어요. 그 여인의 이마를 손으로 만지다가 전기에 감전된 것 마냥 그 즉시 벌떡 일어나고 말았지요. 이유인 즉슨, 이미 죽어 얼음장 같은 사람이고 몸이 굳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몰라도, 의사는 진작부터 소용이 없고 정작 필요한 사람은 관 짜는 사람인 것이지요. 그 괴상한 사내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일어나며 무슨 이상한 일 하나 없는 양하여 나는 좀 화가 치밀었죠. 사람이 제아무리 멍청하기로서니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어, 이미 죽어 얼음장 같은 사람을 의사에게 보이다니 이 얼마나 엉뚱한 일인가 말이지요. 나는 화가 좀 난 표정으로 나무라며 말했어요.

  “틀렸어요, 틀렸어. 이 사람은 이미 다른 방도가 없소. 좀 일찍 손을 쓰지 그랬소.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뭐라구요?” 그가 말했지요. 이상한 것은 그가 여전히 그리도 차분하게 말하는 것이었죠. “가망이 없나요? 물을 뿌려보면 된다고 했잖아요?”

  속으로 생각했죠. 이 바보 멍청이가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나랑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군! 내가 말했어요. “이미 죽었어요. 모르겠어요? 죽은 사람에게 물 뿌려 살려내는 일은 신선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가 말했어요. “그 여자 죽은 거 알아요.”

  나는 더욱 화가 났지요.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이니 오늘 어떤 바보 천치한테 속아서 삼십 년을 허투루 살았으니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고 마음이 몹시 언짢았어요. 내가 말했어요. “이 여자 죽은 걸 알면 당연히 관을 짜서 장사를 지내야 하고, 도사와 스님들 좀 모셔 경이라도 읊게 해야지, 왜 나를 데리고 온 거요? 나보고 어쩌라고!”

  “저를 봐서 그 여자를 살려줘요!”

  “죽었다구요!”

  “그 여자가 죽었으니깐 당신보고 살려달라 하는 거예요!”

  “아니, 아니요, 나 갈래요. 이제 당신하고 이렇게 실랑이하지 않을래요. 나를 그렇게 오래 가둬 놓고 시간 뺏은 게 얼만데 알고 보니 이 일로 그런 거군요. 나는 의사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오. 나를 좀 놔주구려, 시체와 함께 있을 수 없고 당신과 한 곳에 있기도 싫어요!”

  말을 많이 했지만 결국 이 사람을 용서하게 되었지요. 내 요청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에도 생각이 미치니, 남은 세월이 그리도 창창한 사람이 갑자기 짝을 잃고 말았으니 그 얼마나 슬펐을 것이며 당연한 이치도 모르게 된 것이겠지요. 이런 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아 봐야 별반 소득이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때 의사가 도움 줄 수 있다고만 알았고 나를 알고 있기에 나를 찾아온 것이고 혹시라도 말을 분수 넘게 한다면 정말 미쳐 날뛰다가 이 동굴 안에서 나를 목 졸라 죽이고도 남음이지요. 이곳을 벗어나자니 자연 계책을 바꿔야 희망이 있었죠. 그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난 두 번째로 그 시체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 차가운 손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흔들려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등불 아래 죽은 이의 얼굴과 다른 부위를 검사하기 시작했지요. 내 눈이 좀 이상한가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그 죽은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사람이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결한 미인이고 여인의 얼굴과 팔, 다리 모두 농촌 아녀자 같지 않았고, 더욱 놀랍게는 몸에 걸친 의복이 아주 고풍스러우며 옷에 황토가 잔뜩 묻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내가 고개를 들어 그 괴상한 사람을 쳐다보니 실성한 듯하면서도 신비 가득한 두 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지요.

  “이해 못 하겠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어디서 업고 온 것이오?”

  “……”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겠소.”

  “무덤에서 업어 왔어요.”

  “뭐라고? 어디라고!”

  “무덤에서요!”

  “죽은 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요? ……죽었는지 알면서 파내왔다고? ……”

  그는 처연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등불은 언제라도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릴 것 같아 나는 멍하면서도 놀라고 매우 화가 났지요. “이 사람이 정말 고약하군! 어디서 데려왔는지 아니면 어디로 데려갔는지 상관없어! 범죄를 저지르고 나를 끌어들이고 있으니, 당신을 고발하여 당신 장난질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도록 하겠소! ……”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왜 입밖에 떨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눈은 나랑 한 장도 채 떨어지지 않은 채 나를 힘으로 압도하고 있었지요. 마음속에 다시금 공포감이 밀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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