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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의사」(3)

 

 

의사(3)
(醫生, 1931)

 

 

선충원(沈從文)

 

  하지만 이 사람은 한마디 대꾸도 없이 소똥으로 범벅이 된 골목길로 나를 잡아끌고 가더니만 담장이 무너진 곳으로 기어올라 채소밭을 가로질러 달려 발밑으로 채소를 많이도 밟아 망가뜨린 것이 기억나네요. 우리는 그렇게 허겁지겁 채소밭을 밟고 지나며 갓 돋아난 채소싹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지요. 여러분도 잘 알 거요, 의사라면 항상 이렇게 희한한 일들을 겪어야 하는 법임을. 어느 집안 아들이 풍을 맞았다느니, 어느 부인네가 고작 백 원 때문에 분통이 터져 목에 밧줄을 감는다든지, 지체 높은 뚱보가 발목을 겹질려 땅에 쓰러져 일어나질 못한다든지. 결국 이와 같은 일들은 이 작은 도시에 하루에도 한둘은 꼭 발생하게 마련이랍니다.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의사를 떠올리는 법이지요. 보자마자 다짜고짜 한 손으로 당신을 잡고 냅다 달리는데 당신이 도망갈까 봐 의심해서이고 또 목덜미만 잡고 있으면 더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내가 약봉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지 않다면, 내가 시내에서 오래 살지 않았다면, 부녀자들 집에서 무슨 일이 생겨 봉두난발로 흐느껴 울며 꽉 붙잡고 길거리를 달리고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다면 사람들 우스갯거리가 되지 않겠소? 만약 여기 경찰이 나를 알지 못하면 그 신성한 임무를 집행하기 위해 이 상황을 보고 나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 조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매일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매일같이 거리에서 붙잡혀 다니는 사람인지라, 모두가 나를 알고 모두가 내가 왜 잡혀서 끌려가는지 별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로, 내 자신은 자연히 나를 끌고 가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길 수 없는 법이지요. 지금이 바로 그 모양이지요. 이 사람이 나를 끌고 채소밭을 달리고 나도 그를 따라가고 이 사람이 나를 끌고 어느 농가 앞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오고 하는 일이 전혀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어요. 개들이 나를 보고 왕왕거리며 짓고 닭 여러 마리가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고 마음속으로는 이건 술 마시고 손님 맞는 일이 아니고 무슨 사고가 났으니 이 사람이 이렇게 허둥지둥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집안에 누군가 숨이 넘어가려 하고 아니면 이미 숨이 넘어가 내가 서둘러 가더라도 이미 가망이 없으리라 생각했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달리기 바빠 술 생각이라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달리느라 좀 숨이 찼지만 어서 빨리 도착해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나 살펴보고 싶었어요. 의사는 양심도 없고 감정도 없다고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를 잡아끌고 앞으로 달려갈 때 내 마음속에 동정심이 얼마만큼 일어나는지 당신들은 모를 거요. 좀 이기적인 마음이라면 그렇게 고명하지 못한 감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일 때 내 덕분에 방도를 찾아 돌아가곤 한답니다.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면 나의 경험과 열정으로 환자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잘 대처하게 된답니다. 하지만 내 진료를 받고 급성이건 만성이건 여러 번 나를 찾아오건 아니면 내가 방문했건, 그 뒤로 별도리 없이 결국 죽게 되었을 때 환자의 병과 내 자신 의사의 도리로 보면 나의 적막이 그리도 오래가고 깊을 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겁니다. 거리에서 친한 사람들 얼굴을 보고 그 얼굴로부터 그 사람이 나를 청하여 환자를 보게 했을 때 그 얼마나 긴장하고 당황했는지를 떠올린답니다. 그 뒤로 그 사람이 죽을 때 또 얼마나 슬퍼하고 죽은 지 좀 지나면 얼마나 또 잘 잊어버리는지 내 마음은 정말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슬퍼진답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말하는 양심 없는 의사의 일입니다! 그는 날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벌이는 광경 때문에 가만히 탄식한답니다. 그는 매일같이 여기저기 새로운 슬픔을 찾아다니며 매일같이 하나둘은 맞닥뜨리게 마련이지요. ……이제 진지한 이야기 좀 합시다. 내가 그 사람에게 잡혀 모르는 길을 한참을 끌려갔다고 했지요?

  그렇게 우리는 들판으로 나갔지요. 그 사람은 나를 좀 놔주지도 않고 제법 멀리 나왔기에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지요. 내가 말했답니다.

  “이보시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급하게 가니 한 발짝도 더 못 가겠소. 나는 나이가 들어 당신처럼 그렇게 건강하지 못해요. 잠깐 쉬면서 숨 좀 돌립시다.”

  그가 나를 쳐다보더니 내가 무리했단 걸 알고 발걸음을 천천히 했지요.

  우리 두 사람이 발걸음을 천천히 했기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가 작은 시골길을 걸었고 논두렁을 한참 달려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람 집이 산채에 있는 마을이라 여기며 집에서 마누라가 아들을 낳다가 난산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미칠 지경이 되었다라고 짐작했죠. 왜 그때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그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말을 못 하지요?”

  그가 말했어요. “그래요.”

  “그러면 괜찮아요. 물 좀 뿌려줬어요?”

  이상하다는 듯이 그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죠. “물을 뿌려준다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죠.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요?”

  그가 날짜를 세는 것 같더니만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더니 다시 환자가 위급한 지경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지 나를 끌고 날 듯이 달렸지요. 나는 이 사람 마음을 잘 안다 생각하고 이 사람을 잘 이해한다 생각했지요. 왜냐하면 내 경험과 신념 그리고 환자에 대한 마음으로 미뤄보건대, 도착하면 환자의 고통을 좀 줄여줄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이 남자를 좀 안정시켜 미쳐 날뛰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겠다라고요. 이 남자를 따라 달려가며 한편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 느끼는 상황을 떠올리며 과거의 일이 눈과 마음에 즐거운 편린으로 떠올라 하나하나 기억하며 이 모두를 조용히 감내해야만 하는가 이해할 수 없었지요.

  나는 그보다 더 빨리 걸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지요. 나를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여 논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사실 달려온 길도 너무 많았고 날씨도 너무 좋고 옷도 두껍게 입었고 겨드랑이에 낀 보따리도 가볍지 않고, 게다가 밟고 가는 길도 시내에서 돌길을 산보하는 의사에게 익숙지 않은 데다가 얼마 전 내린 비로 미끄러워 다니기 어려웠지요. 가죽 신을 신고 있어 미끄러져 넘어질까 무서워 말했어요. “안 돼요, 안 되겠어요. 논바닥에 주저앉고 말겠어요. 나는 의사이지 군인들 급하게 가는 건 도저히 못 하겠어요. 어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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