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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13] 방약무인(傍若無人), 예술적 감흥이 절정에 이르면 다른 차원을 경험한다

 

  간혹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언행이 대담하고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어울려 사는 사회인데 사회적 관행이나 약속을 가뿐히 무시하는 것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자기만 있는 듯 주변을 개의치 않고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고 한다.

  방약무인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행이 마치 혼자 있는 듯 다소 거칠어 질수도 있기 때문인지 흔히 안하무인(眼下無人)과 비슷하게 쓰인다. 안하무인은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방자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안하무인은 그야말로 주변을 무시하는 오만불손한 태도이므로 사실 방약무인과 안하무인은 그 뜻이 다르다.

  방약무인에 얽힌 이야기에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전국시대 자객 형가(荊軻)와 그의 친구인 악사 고점리(高漸離)이다. 형가는 진시황이 진왕(秦王)이던 시절, 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여 암살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형가의 일대기와 암살 시도 과정 그리고 당시 진(秦)과 주변국의 정황은 『사기(史記)·자객열전(刺客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방약무인이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등장한다.

 

 

협객과 악사의 만남

  형가는 진왕 암살계획에 동참하기 전까지 그저 거리의 검객 중 하나였다. 진왕 암살이라는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계획을 감행할 재목을 물색하던 연(燕)나라 태자 단(丹)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를 만나기 전, 형가는 거리에서 개 잡는 사람인 소위 개백정들과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형가는 축(築: 고대 악기 중에 금琴과 비슷한 대나무로 만든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를 알게 되었는데, 고점리의 연주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형가는 고점리와 점차 가까워졌고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술 좋아하는 검객과 최고의 악사의 만남이었으니, 풍류와 흥이 빠질 수가 없었다. 저자거리에서 고점리가 연주하면 형가가 노래와 춤으로 화답하며 서로 즐거워하다가 둘이 붙잡고 울기까지 했는데, 그 순간 ‘마치 주변에 사람이 없는 듯했다(傍若無人)’고 한다.

 

[그림1] 고대 악기 축(築)

 

  둘은 왜 부둥켜안고 울었을까. 어떤 경지였기에 오직 둘만 있는 듯,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인가. 시장은 오가는 사람이 많고 상당히 소란스러웠을 텐데 전혀 의식하지 못할 지경이란 무엇인가. 형가와 고점리는 흥이 충일하게 차오른 일순간에 어떤 교감을 경험한 것 아닐까? 아마 평상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이성과 감정의 벽이 허물어지고 나와 너의 경계를 넘어서는 예술적 혹은 감정적 몰입은 아니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그 정점의 단계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보자면 방약무인은 사회적 약속이나 규칙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방종과는 차원이 다른, 외부에서 들어온 예술적 자극이나 감흥이 내면의 무언가와 합일하는 고차원적 경험을 겪고, 이로 인해 정신적 에너지가 솟구쳐 언행을 통해 흘러넘치고야 마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암살실패와 친구의 죽음

  후에 진왕을 암살하러 떠난 형가는 암살에 실패하고 현장에서 진왕의 칼에 허벅지를 여덟 군데 찔린 후 죽임을 당한다. 암살은 실패했고 친구는 죽었다. 친구를 잃은 고점리는 슬픔에 빠졌지만, 이후 축 연주의 대가라는 소문을 들은 진왕에게 초대를 받는다. 이때 고점리는 진왕 암살의 뜻을 품고 친구의 원수를 갚으려 했지만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눈이 뽑혀 죽임을 당한다. 음악으로 높은 경지의 예술적 교감을 나누던 그들은, 결국 둘 모두 진왕의 손에 죽고야 말았다.

 

[그림2] 한대 화상석에 묘사된 형가의 진왕 암살 장면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

 

  고사의 유래를 알면 방약무인을 안하무인과 구별하게 된다. 그리고 언뜻 형가와 고점리 같은 방약무인의 경험이 있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평소에 이성과 규율로 재단된 정신과 감정으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오래된 탓인지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음악이든 감정이든 나를 벗어난 탈아(脫我)의 경험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신축년 새해이다. 올해는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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