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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삼국-무영자>와 <자객 섭은낭>

 

  최근 이렇다 할 무협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을 대표하는 한 장르인 만큼 무협영화는 물론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얼핏 생각해보면 커진 자본력과 첨단의 기술력이 더해져 예전보다 더 멋진 무협영화가 계속 나올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요즘 무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영화들을 보면, 무리한 판타지나 별 개연성 없는 멜로 등을 억지로 섞어 넣은 이도저도 아닌 잡탕식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아쉽고 또한 안타깝다. 이런 걸 두고 풍요 속 빈곤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IPTV에 무료로 올라와 있는 장예모의 근작 <삼국-무영자(2018)>를 보았다. 거장 장예모라는 이름에다가 무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게다가 무료라면 구미가 확 당겨야 하건만, 솔직히 별로 보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장예모 영화에 별 기대를 하지 않게 된지가 꽤 된 것 같다. 아마도 <연인>, <황금갑> 이후부터 였나. 물론 장예모는 그 이후로도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며 영화를 만들었고, 때때로 흥행과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삼국-무영자>를 본 소감도 역시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작인 <만리장성> 보다는 그나마 좀 나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영 아쉽고 씁쓸하다. 스토리도 어설프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다지 와 닿지가 않았다. 시대 설정도, 상황과 인물의 관계도 모호하고 어설퍼서 좀처럼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배우의 매력이 컸다면 그런 점들이 좀 상쇄될 수도 있을 텐데, 캐스팅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자 그렇다면 장예모의 특기인 색채미는 어떨까? 장예모 영화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한 색채로 시선을 끄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칼라를 거의 빼고 세련되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흑백을 선보이고 있다. 많은 공을 들인 만큼 마치 멋진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음으로 무협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액션을 살펴보자. 우산을 활용한 액션신은 신선하고 좋았다. 군사들이 방패를 들고 대규모로 공처럼 굴러가는 시퀸스도 독특했다. 뭔가 좀 색다른 액션 시퀀스를 추구한 건 알겠다. 하지만 역시 스토리가 부실하다 보니 액션의 정당성이라든가 시원시원함이 부족하고 입맛이 영 씁쓸하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봐도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는 주기 어렵다. 여담으로 하나 이야기하자면, 장예모는 구로사와 아키라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영웅>에서는 <라쇼몽>을 참고한 것 같고, 이 영화 <삼국-무영자>는 <카케무샤>를 참고한 듯 하다.

 

[그림1] <삼국-무영자> 스틸 컷

 

  장예모의 신작 무협을 이야기한 김에 <자객 섭은낭(2015)>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해볼까 한다.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도 몇 년 전 첫 무협연출작 <자객 섭은낭>을 선보인 바 있다. 그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도 받고, 또한 많은 평론가들이 영화에 찬사를 보냈다. 예컨대 역시 허우가 만드니 다르네, 기조의 무협과는 결이 다른 색다른 수정주의 무협이네 하며 추켜세우는 말들이 많았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허우샤오시엔이 만드는 무협은 과연 어떨까 궁금했고, 영화가 나오자마자 찾아본 축이었다. 영화를 본 개인적인 소회는, 이 영화 역시도 내내 아쉽고 어설프다는 느낌이 컸다는 점이다. 마치 90년대 왕가위의 <동사서독>을 보고 난 뒤 어리둥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생경함이고 아쉬움이지만 말이다.

  잘 만든 무협영화에는 물론 삶과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철학이 담길 수 있고, 그를 통해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도 있다.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도 좋고 서정미, 혹은 시적 운미 등등도 다 담아낼 수 있다. 또한 무협이라는 형식적 외투 안으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 운명에 대한 이야기,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 구도에 대한 이야기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협영화는 좀 무협영화 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즉 다른 무엇보다 ‘협의에 대한 적극적 구현’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강자의 횡포에 맞서고 약자의 편에 서는 무협들의 모습, 그들의 시원시원한 액션, 그걸 보고 싶다.

  <자객 섭은낭>, 한마디로 답답하고 밋밋해서 끝까지 보기가 힘들고 지루했다. 장예모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특유의 색채 미학을 보여주는 감독이 허우샤오시엔이다. 이 영화 역시 미장센에 큰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지만, 영화에 깊이 감정이입 되지 못하다 보니 그런 것들도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요컨대 <자객 섭은낭>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협영화로서 별 재미와 매력이 없는 작품이다.

 

[그림2] <자객 섭은낭> 스틸 컷

 

  중화권의 일급감독들에게도 무협영화는 한번쯤 통과해야 하는 통과 의례이거나 혹은 자신들의 영화적 역량을 한번 세게 시험해 보는 잣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멋진 무협영화를 만드는 일은 참 어려운 작업인 것 같다.

 

[그림3] <삼국-무영자> 포스터

 

[그림4] <자객 섭은낭>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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