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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천잉전의 『시골선생님』(1)

 

시골선생님(1)
(鄕村的敎師, 1960)

 

 

천잉전(陳映真)

 

1

  청년 우진샹(吳錦翔)이 남방 전쟁터에서 귀국했을 때는 타이완이 광복을 맞은 지 이미 일 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그 때는 살아남아 돌아올 사람은 모두 돌아왔을 때였다. 바로 지금 산을 등지고 있는 다후향(大湖鄕)의 군인 가족 다섯은 모두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여러 해 품은 희망을 놓아버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종류의 환멸이 그들의 비애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필시 사람들이 전쟁의 와중에 부름을 받아 출정하고 전사하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광복이란 이 소박한 산골 마을에서도 사뭇 흥분할만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흥분된 기분으로 즐겁게 모여 린춰(林厝) 광장에서 지신제 연극을 이틀 동안 성대히 열었다. 사람들 혼을 빼놓는 고색창연한 징소리는 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산골 마을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이처럼 담담한 격정이란 죽음의 상실감에서 나오는 슬픔을 과장하길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을 뒤덮어 결국 이렇게 평정하고도 세심하게 자신들의 희망을 버릴 수 있게 하였다―

  “우리 젠츠(健次)는 가망이 없어,” 영감님이 말하며 욕을 퍼부었다. “누군가 바탄 섬에서 같은 연대에 있었다네. 그 사람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바탄에 남은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몰했다는구만!”

  날이 저물자 산바람이 불어온다. 이번 전쟁이 이 조그만 산골 마을에 직접적으로 남긴 이야기를 사람들은 하나하나 다시 되풀이하고, 돌아오지 않은 다섯 장정에 대해 한가하게 이야기하고, 물론 우진샹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이 그 해에 죽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마을 사람들이 그들 죽음에 냉담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덧붙이자면, 사람들은 또한 머나먼 열대 지방 남방의 일에 대해 듣기도 했다. 그곳의 전쟁, 그곳의 화약연기, 그곳의 해안과 태양, 삼림과 말라리아를. 이들 이국의 신비와 심지어 출정한 사람들을 그곳에서 장사지낸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그저 모두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쟁의 격정은 일 년 남짓한 시간이 흘러 차츰차츰 평정을 되찾았다. 어느 하나 변한 것 없는 듯하여, 비탈 위의 태양이 여전히 그렇게 사람에게 내리쬐며, 그들 역시 변함없이 고된 일을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생활도 예전처럼 나날이 팍팍해져만 갔다. 숙명처럼 아무 재미없는 생활을 이 조그만 마을에서 보냈고 하루하루 일상이 되어갔다.

  바로 이 무렵, 우진샹이 드디어 조용히 귀국했다. 마을 사람들은 비오는 날 열기 속에 다른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놀라워하며 이 등잔불 아래 앉은 생존자를 빤히 쳐다봤다. 왜소하고, 검게 탔지만(물론이다) 결코 건강하다할 수 없는 한 청년을. 시커먼 수염이 그의 뾰족한 턱과 뺨을 온통 뒤덮고 있었고, 낯선 미소를 지으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했다.

  “태평해졌군요.” 그가 말하고 웃었다.

  “그렇지, 태평해졌어.” 모두들 맞장구치며 말했다. 아직 고향 말씨를 기억하고 있구만! 물론이다, 물론 그는 기억했다. 단지 그가 고향을 떠난 지 이미 오 년이 흘렀을 따름이다. 그가 태평해졌다고 다시 말했다. 모두들 흥분하기 시작했다.

  “우리 젠츠는?” 영감님이 말했다. 맞아하고 모두들 소리 없이 맞장구치며 젠츠랑 그 얘들은? 돌아오는 거야……

  우진샹은 뜻밖에도 두려운 기색만 보였다. 손가락이 곱꺾이며 우두둑 소리만 적막 속에 울리니 정말 이상했다.

  “저를 보르네오로 보냈어요,” 그가 일어섰다. “바탄에서 그들과 헤어졌어요.”

  사람들은 감격했다. 그렇게 먼 곳이라니. 그들이 말하길, 보르네오는 일본인들이 Borneo라고 부르는 곳이니 아득히 먼 곳이 아닌가. 돌아온 청년은 이내 그 불편한 미소로 돌아와 말했다.

  “태평해졌지요.”

  “태평해졌지.”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 그렇지? 출정한 사람들이 이미 다들 죽었다 말들을 해도, 우진샹처럼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올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 그래도 결국 전쟁은 끝났다. 비 그친 산림을 어둠이 휘감았다. 나뭇잎과 나무줄기에 달빛이 비춰 반짝였다. 그리고 산골 마을은 다시금 열대 남방의 신비로운 이야기로 반짝거렸다. 사투리가 진하게 밴 일본어로 Borneo라고 유행처럼 말하며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2

  과부 건푸(根福) 아줌마는 기운이 솟아나고 마음도 즐거웠다. 뜻밖에도 전쟁터로부터 아들을 거두어들였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진샹이 출정하기 전과 같이 여전히 말을 잘 듣고 얌전했기 때문이다. 둘째, 어려서부터 공부에 열심이라고 산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하여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모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체면과 관계된 일이었다. 뽐내기 좋아하는 건푸 아줌마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 앞에서 전쟁에서 돌아온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가 말도 잘 듣고 선생님이시라고 사람들이 칭찬할라치면, 좋아라하면서도 겸손을 떨었다.

  “암요,” 그녀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암요.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일할 줄 몰라요. 그런 몸과 마음을 가지고도 밭일 하나 제대로 못 한다니깐요……”

  그렇게 말할 때 모성의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힘이 넘치는 어머니였고 건강하고 쾌활했다. 그녀는 스물여섯 먹은 아들을 아직도 허약한 어린아이인 양 평가했다. 그리고 아마도 바로 이런 종류의 모성 욕망 때문에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집요하게 일굴 수 있었고, 날이 밝자마자 읍내 장터로 나갈 수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먹여 살리려 했고 마음속이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어깨 위에 밀대를 지고 흔들어댔다. 태양이 산비탈 뒤 언덕 너머로 떠올랐다. 이른 아침, 비탈 위, 밭고랑, 그리고 한적한 시골길 위로 안개가 뒤엉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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