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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읍지 이야기 55] ‘중국 도읍지 이야기’를 마치며

 

[사진1] 레이펑과 빌 게이츠(중국국가박물관, 2008)

 

 

레이펑과 빌 게이츠가 하나로

  베이징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있던 어느 날, 천안문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오주석기념관으로 들어가려고 길게 줄을 선 그들 위로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광장 동쪽의 중국국가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이날 박물관에서 관람했던 밀랍인형 전시는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밀랍인형 전시관 입구에서는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의 우주비행사 양리웨이(楊利偉)의 밀랍상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시관 안에는 정치·사상·예술·체육 등을 대표하는 126명의 밀랍상이 분야별로 배열되어 있었다. 정치 인물을 모아 놓은 전시에서는, 진시황부터 시작해서 강희제에 이르는 역대 제왕의 밀랍상이 한쪽 편에 줄지어 있었고 그 맞은편에 쑨원을 비롯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등 현대 중국 지도자의 밀랍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금의 단절 없이 하나로 이어져온 ‘중국’이라는 메시지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치밀한 ‘기획’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밀랍인형 전시관의 끝자락에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밀랍상을 보는 순간 ‘아!’ 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그 둘은 례이펑(雷鋒)과 빌 게이츠였다. 레이펑은 영웅열사의 끝자락에서, 빌게이츠는 유명 외국인의 끝자락에서 서로를 향해 서 있었다. 멸사봉공의 화신인 레이펑은 공산주의 혁명정신의 상징이다. 자본주의의 아이콘 빌 게이츠가 레이펑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미국과 중국이 마주한 장면이었다. 나는 레이펑과 빌 게이츠라는 이질적인 두 존재를 보면서 그들이 합체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부강한 공산주의 중국’, 중국이 욕망하는 중국의 미래상이었다.

 

오래된 미래

  그 미래상이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일찍이 쑨원 탄신 90주년이던 1956년, 마오쩌둥은 45년 뒤를 내다보면서 21세기 중국은 ‘강대한 사회주의 공업국’이 되리라 기대했다. 당시 중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실현하기 어려운 ‘꿈’이었지만, 어쩌면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은 팍스 시니카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중국특색 사회주의, 중국식 시장경제, 중국 모델 등 중국은 부단히 ‘중국의 길’을 모색하고 실천해왔다. 그 성과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제 중국은 세계 질서의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판짜기의 모토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이다. 바로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최고라는 중화(中華)사상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일종의 컬처코드(culture code)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국 이후 30년과 개혁개방 이후 30년을 지나온 중국이 새로운 30년을 펼쳐가는 중이다. 지난 두 단계 30년의 모토가 각각 계급투쟁과 경제발전이었다면, 현재 진행 중인 30년의 모토는 ‘위대한 중화의 재현’이다. 글로벌 리더라는 중국의 지위는 그들에게 ‘오래된 미래’다. 중국은 세계의 정점에 있었던 찬란한 과거를 미래의 자원으로 동원한다. 찬란했던 역사의 기억을 지닌 중국으로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이 일종의 ‘당위성’을 지닌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현재와 미래의 실천 동력이기에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다.

 

 

중국을 알아가는 지도, 도읍지

  중국몽의 역사적 자원이 바로 역대 도읍지에 깃들어 있다. 도읍지로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그들의 ‘오래된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덩샤오핑 외교정책의 근본이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히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시대는 일찌감치 지나갔고, 대국으로 굴기했다. 중국의 자신감, 그 근원에는 영광스런 과거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유구한 문명국가라는 중국의 자부심, 그 역사적 자원의 원천인 문화유산을 도읍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시안을 비롯해 뤄양·카이펑·항저우·난징·베이징, 중국의 중심이었던 이들 도읍지는 각 시대의 정치·경제·문화가 집약된 곳이다. 중국인의 영광과 고난의 기억이 응집된 곳이기도 하다.

  한동안 이 지면을 빌어 중국의 고대 도읍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랜 역사와 광대한 땅과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은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어떠하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중국에 대한 단순하고 피상적인 정의를 넘어서 다양한 중국의 속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중국에 대해 말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그 다양한 얼굴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내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에 관한 모색도 필요하다. 중국이 어떤 ‘길’을 거쳐 왔는지, 역대 도읍지의 역사가 그 길 찾기에 훌륭한 ‘지도’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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