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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16]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까지 내보여야 하는 거짓 우정

 

  친구와의 우정은 인생의 필수 요소이자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부분이다. 중국 역사에는 세상이 칭송하는 진정한 우정을 나눈 인물들도 많고 거기서 유래한 표현도 꽤 있다. 지음지기(知音知己), 관포지교(管鮑之交), 문경지교(刎頸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간담상조(肝膽相照) 등이 바로 그러한데, 오늘은 그중 간담상조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간담상조는 간과 쓸개가 서로를 비춘다는 뜻으로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친하게 사귐을 의미한다. 즉 간과 쓸개까지 내보일 정도로 참된 우정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간담상조라는 표현의 유래를 보면 원래 나타내고자 했던 뜻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곤경이 진위를 드러낸다

  유우석(劉禹錫)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당대(唐代)의 문인이자 관리였는데 어느 날 파주자사(播州刺史)로 좌천되었다. 파주는 현재의 귀주성(貴州省) 준의현(遵義縣)으로 중국 서남부의 외진 곳이다. 발령을 받았으니 임지로 떠나야 하건만, 80세가 넘은 노모를 모시던 유우석은 모친을 홀로 남겨두고 갈 수 없었고, 그렇다고 모시고 가자니 길이 멀고 험해서 함께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임지로 떠나라는 나라의 명과 연로하신 부모님 사이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림1] 유우석

 

  그리고 유종원(柳宗元)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 역시 당대 문인이자 관리였고, 또 유우석의 친구이기도 했다. 유종원은 정치혁명에 가담했다가 실패했고 그 후 수차례의 좌천으로 정치적인 고초를 겪고 있었다. 유종원은 자신이 유주(柳州, 지금의 광서성廣西省 유주시柳州市)로 좌천 명령을 받았을 때 친구 유우석 역시 파주로 좌천되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러 번 상소를 올려서 자신과 유우석의 임지를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유종원은 귀주보다는 유주가 그나마 친구의 고심을 덜어줄 것이라 판단했고, 명을 거역한 죄를 받을 각오로 친구를 위해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폄적지의 맞교환이 쉬울 리가 없었다. 결국 이런 정황을 모두 알게 된 다른 친구의 도움으로, 나중에 유우석은 연주(連州, 현재 廣東省 連縣)로 가게 되었고, 유종원은 예정지인 유주로 가 그곳에서 47세에 병사했다.

 

 

친구를 위해 발령지 교환을 요구

  당대의 문호 한유(韓愈)는 친구인 유종원이 죽자 그의 묘지명을 썼다. 묘지명에는 일반적으로 고인의 일생과 기릴만한 사건이나 성품을 기록하는데, 한유는 유우석과 폄적지를 바꾸려 노력했던 일을 예시로 들면서 유종원의 사람됨을 기록했다.

 

  선비는 곤경에 처했을 때 절개와 의리가 드러난다. 오늘날 사람들은 평상시에 같이 지내면서 서로 그리워하고 즐거워하며, 술자리나 연회를 만들어 서로 부르곤 한다. 농담과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서로 양보한다. 손을 맞잡고 폐와 간을 서로 보여 주며,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눈물 흘리면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배반하지 말자며 마치 진실인 듯 맹세한다. 하지만 일단 작은 이해관계 앞에서는 터럭만한 이익도 비교하며 눈을 돌려 모르는 사이인 척 한다. 함정에 빠지면 손을 뻗어 구해주기는커녕 반대로 구덩이로 밀어 넣고 돌까지 던진다. 모두들 이렇다. 이는 짐승이나 오랑캐도 차마 하지 않는 일이거늘 그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유종원의 일화를 듣는다면 조금이나마 부끄러워할 것이다.

–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

 

[그림2] 유종원

 

  유종원과 유우석은 같은 해에 과거급제하고 함께 정치혁명에 참여했다가 혁명 실패 후 험지로 좌천을 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뜻을 같이하고 어려움을 당하면서 둘의 우정은 깊어졌다.

  한유는 유종원의 우정과 인품을 칭송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거짓 인간관계에 일갈을 던졌다. 유종원의 우정과 의리도 생각할수록 감탄스럽고, 한유의 묘지명도 읽을수록 명문이다. 곤경과 고난이 옥석을 가리는 기회가 된다는 것, 친구나 우정이라는 허울아래 이익과 술수가 난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한결같다. 1200년 전의 문장이 지금 우리사회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얄팍한 속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우정은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르다. 그러니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는 과장과 자극이 있어야 간신히 믿을 수 있을까 말까하는 참담한 지경을 벗어나기 어렵다.

 

 

신뢰 없는 관계에 허세만 가득하다

  그러나 진정한 우정은 겉과 속이 언제나 같다. 아니 겉과 속을 나눌 필요조차 없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친구의 사정을 알고 화려한 언사나 꾸밈이 없어도 견고한 사이이므로 간이니 쓸개니 들출 이유가 없다. 원래 간담상조는 알맹이 없이 껍데기뿐인 우정을 꼬집은 표현이었는데 지금은 간과 쓸개를 보여줄 정도의 속 깊은 사이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사자성어에는 이렇게 원래의 뜻과 정반대 의미로 쓰이는 것들이 있는데, 간담상조도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이다. 죽기 전 자신의 모든 원고를 유우석에게 남긴 유종원과 유종원이 죽은 후 그의 어린 자녀 4명을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본 유우석, 그리고 둘의 깊은 우정을 묘지명에 쓴 한유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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