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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와 문화의 이모저모 2] 진왕 암살 사건에 대한 단상

 

[그림1] 형가의 진왕 암살 사건을 묘사한 화상석

 

 

무엇을 칭송하는가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 왕 영정(嬴政)이 중국을 통일한다. 시황제(始皇帝)라 불리게 된 그는 제국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다. 수도 함양(咸陽)에서 제국의 동서남북으로 뻗은 치도(馳道)를 따라 진시황은 천하를 순행하면서 곳곳에 자신의 공적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태산(泰山) 석각에서부터 낭야(琅邪), 지부(之罘), 동관(東觀), 갈석(碣石), 회계(會稽) 석각에 이르기까지 한목소리로 진시황의 공덕을 칭송하고 있다. 이 칭송을 관통하는 논리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함으로써 전쟁을 종식시켰기에 백성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천하가 태평해졌다는 것이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전해지는 석각의 칭송을 읽다보면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영웅>(2002)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진나라가 육국을 차례대로 접수해나가던 전국시대 막바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진왕의 야욕을 꺾기 위한 자객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진시황을 칭송하는 석각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진왕을 죽이고자 했고 죽일 수 있었던 잔검(殘劍)은 마지막 순간에 그 기회를 포기한다. 몇 년 뒤 그는 진왕을 죽이고자 하는 또 다른 자객 무명(無名)을 만류한다. 이때 잔검이 무명에게 건넨 두 글자, 바로 ‘천하(天下)’다. 무명은 결국 진왕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근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 기회를 포기한다. 천하를 통일해 백성들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진왕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진시황이 통일 후 세운 비석과 21세기의 영화 <영웅>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천하’의 논리는 결코 전국시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재해석된 논리다. 그 논리의 근거는 ‘통일’된 현재의 상황이다. 전국시대는 ‘전국(戰國)’이라는 말에 걸맞게 진(秦)·초(楚)·제(齊)·위(魏)·한(韓)·조(趙)·연(燕)의 전국칠웅(戰國七雄)이 치열하게 다투던 시대였다. 진왕 영정 당시에 이미 초강대국이었던 진나라는 육국에게 사신(死神)과 같은 존재였지 평화를 가져다줄 존재는 결코 아니었다. 여섯 나라는 사신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당시의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은 모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약한 나라끼리 힘을 합치든지, 강한 나라에 빌붙든지. 전자의 구도가 합종이었고 후자의 구도가 연횡이었다.

 

 

진왕 암살 사건

  진왕 영정은 서른이 되던 기원전 230년, 여섯 나라 가운데 처음으로 한나라를 멸망시켰다. 강국이 약국을 병탄하기로 작정한 이상 약한 나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항복하거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뿐이다. 그것도 안 될 경우에 개인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객을 쓰는 것이었다. 기원전 227년, 함양궁에서 그 유명한 진왕 암살 사건이 벌어진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는 이 일의 경과를 아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형가(荊軻)가 진왕을 죽이려는 장면이다.

  형가 일행이 바친 지도가 다 펼쳐지는 순간, 비수가 나타나고 형가는 왼손으로 진왕의 옷소매를 붙잡고서 오른손으로 비수를 쥔다. 진왕은 놀라 일어나고 형가가 붙잡고 있던 소매는 뜯어진다. 진왕은 칼을 차고 있지만 너무 길어서 뽑을 수가 없다. 궁실 안에 있는 기둥을 돌면서 달아나던 진왕에게 누군가 외친다.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십시오!” 이렇게 해서 긴 칼을 뽑을 수 있게 된 진왕은 형가의 왼쪽 다리를 자른다. 형가는 쓰러지면서 비수를 진왕에게 던진다. 비수는 빗나가 구리기둥에 박힌다. 진왕은 형가를 다시 여덟 번 찌른다. 형가는 구리기둥에 기댄 채 울분을 터트린다. “일이 실패한 건 너를 사로잡고자 했기 때문이다. 너를 위협해 약조를 얻어내어 태자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몰려온 신하들이 형가를 죽인다.

  암살은 실패했다. 결국 이로 인해 연나라는 위험에 빠지고 만다. 노한 진왕은 연나라를 공격했다. 연나라의 수도는 함락되고 연나라 왕과 태자는 요동으로 달아났다. 이때 조나라 왕이 연나라 왕에게 서신을 보내온다. 암살을 기획했던 태자를 바치면 진왕이 용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연왕은 태자 희단(姬丹)의 목을 베어 진나라에 바친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진나라는 다시 연나라를 쳤고, 5년 뒤 연나라는 멸망한다. 연나라가 멸망한 이듬해 진왕은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가 된다.

 

 

누가 영웅인가

  누군가에게 진왕은 반드시 죽여야 할 인물이었고, 또 누군가에게 진왕은 반드시 살려야 할 인물이었다. 누군가에게 통일은 선이었고, 또 누군가에게 그 통일은 악이었다. 통일이 선이었던 입장에서는 진왕이 영웅이고, 통일이 악이었던 입장에서는 형가가 영웅이었을 터. 그래서 장이머우의 영웅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천하’가 궁극의 지향점인 이상 영웅은 진시황이 될 수밖에 없다. <영웅>에서 무명은 자발적으로 진왕 암살을 포기하고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그를 향해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진다. 온몸으로 그 화살들을 받아내는 무명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장함 그 자체다. 그 비장미에 도취되어 잠시 착각하게 된다. 무명이 영웅이라고. 어쩌면 장이머우가 말하는 영웅이 그일 수도 있다. 대아(大我)인 천하를 위해 소아(小我)를 기꺼이 희생하는 영웅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진시황이 영웅이든 형가가 영웅이든, <영웅>의 논리는 국가주의 그 자체다.

  일찍이 육국은 진시황에 의해 통일제국으로 편입되었다. 진나라는 통일의 위업을 이룬 것이지만 여섯 나라는 망국의 통한을 겪은 것이다. 그 어떤 사후적 논리로도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쏟아지는 화살을 온몸으로 맞는 무명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역설적이게도 장이머우의 의도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영웅이 필요 없는 시대라는 생각. 누군가를 찔러 죽여야 내가 살 수 있거나, 누군가를 위해 내가 빗발치는 화살을 맞으며 죽어야 하는 그런 시대는 아웃시켜버려야 한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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